만화방아가씨 : ??? 녀석이 지금 상당히 정신상태가 불안하다. 만화방 준용씨가 봐주면 이 영환 저 혼
자 보러갈까요..?
백수 : 이 여자 예리한 여자다. 내가 말실수한 걸 눈치채다니.. 아이씨 보러 갈 건지 안 갈 건지 빨리
대답이나 해주면 좋겠다. 숨이 막힌다.
만화방아가씨 : 보러갈까? 말까? 이 녀석 가지고 노는 게 재밌다. 어린것이..귀엽기도 하다. "아직 주말
에 무슨 일이 생길지 잘 모르겠네요. 그리고 아무리 단골이래도 그렇지.. 다큰 처녀가 아무나하고 영화
를 보러가요.?" 그 녀석의 얼굴이 불그락거린다. 아휴 재밌다.
백수 : 역시 그녀가 나하고 영화 보러 가기 싫어하는구나. 짤없이 거절인가 부다. 내일부터 쪽팔려서
어떻게 만화방 나오나. 괜히 영화 보러 가자구 그랬나보다. 에그 바보야. 그냥 만화책이나 보며 그녀얼
굴이나 쳐다보는 건데..흑흑.
만화방아가씨 : "준용씨 이티켓 나줘요. 제가 가지고 있다가 주말에 시간을 낼 수 있다 싶으면 전화를
할께요. 여기 그때 적어준 전화번호 맞죠? 그리구 가게되면 딸랑 영화만 보는 거 아니겠죠? 전 스테이
크를 참 좋아해요.."
백수 : 야 이거 거절한 거 아니지.. "아 예.. 스테키..그 뭐시라고요.. 울 아부지 지갑을 삥 쳐서라도 그
거 사 드릴께요..하하. 그럼 안녕히 꼭 전화주세요." 야호.. 윽 기쁜 나머지 정신없이 나오다 달려오던
꼬마 자전거와 부딪쳐 걸려 넘어졌다. 지나가던 어떤 여자가 걱정스러운지 깔깔 웃는다. 괜찮다고 꼬
마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프다. 그래도 이게 대수냐..? 하하
만화방아가씨 : 이제 이 영화 대사까지 다 외우게 생겼네.. 이번 주말은 문닫고 미장원이나 다녀와야
겠다. 그 녀석 나가고 나서 뻑 소리가 났다. 뭔 소린가 싶어 나가보았다. 어떤 꼬마가 자전거를 끌며 "
개자식 쪽팔려 주껐다." 그러며 투덜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녀석은 저기 멀리 날듯이 뛰어가고 있
다. 귀엽다.
백수 : 이틀동안 전화기를 부여잡고 그녀의 목소리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녀의 전화는 오지 않았다.
아부지가 저 녀석이 취직 못 하더니 드디어 실성했구나 하며 혀를 차신다. 아직 동정의 눈빛이 남아
있는 걸루 봐서 내가 아버지 비상금 훔쳐낸걸 모르시나 부다.
만화방아가씨 : 그 백수녀석이 만화방을 이틀동안 안나왔다. 좀 이야기 오래 했다 싶으면 그 다음 날
은 꼭 안 나오는 거 같다. 내일은 전화를 해야겠다. 주말이 자꾸 기다려지는 건...
백수 : 아침부터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전화기 근처만 배회하고 있다. 자꾸 아부지 엄마만 찾는 전화
다. 그런 사람 안 산다고 했다. 드디어 저녁에 왠지 그녀 음성 같지 않는 사람이 날 찾았다. 그래서 내
가 그 사람인디요. 라고 대답했더니.. 저 지윤인데요. 저 아시죠 그랬다. 앗 그녀다. 근데 전화 받는 목
소리가 왠지 그녀 목소리 같지 않다. 예전에 나한테 장난전화 한 그 여자목소리 같다. 어쨌든 제발 다
음 말은 내일 시간이 되니 보러가자고 그랬음 좋겠다... 그런데 ..시간이 도저히 안 나겠다고 그런다.
흑 매정한 사람 그 소릴 듣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 괴로움에 괴성을 질렀다. 아버지 어머니가 달려왔
다. 좀 무안해서 아무 것도 아니라 그랬는데 엄마가 내일 병원에 같이 가잰다. 아 죽고 싶다.
만화방아가씨 : 드디어 약간은 설레는 맘으로 전화를 했다. 이 녀석이 시큰둥하게 받더니 내가 말을
끝마치기 전에 끊어 버린다. 뭐 인기 다있노.. 내일 시간이 도저히 안 나겠... 딸깍. 는데 하지만 특별히
아주 단골이라 시간을 내보겠다라고 그럴려구 했는데..우쒸 다시 전화를 했다. 무슨 개울음 소릴 내더
니 감사합니다만 연발했다. 내일 극장 앞에서 보기로 했다. 흠 자꾸 거울에 눈이 가는 건 왜일까?
백수 : 그녀가 다시 전화 왔다. 갑자기 전화 왜 끊었냐고 뭐라 그런다. 순간 정신이 들어 한자 한자
똑똑히 들었다. "내일 극장 앞에서 봐요." 오옴음..(감격의 울음을 애써 참는 소리) 감사합니다. 감사합
니다. 야호 야.. 엄마가 달려오시더니 당장 병원 가잰다. 그 소리가 내 귀에 들어올 리 없다. 내일 아침
일찍 목욕탕엘 가야지. 내일 입고 갈 속옷에서부터 양말까지 머리맡에 챙겨두고 그녀가 내 꿈에 나타
나길 바라며 잠자리에 들었다.
백수 : 새벽에 해뜨자마자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산뜻하게 개인 아침하늘아래 그 영롱함은 내 마음을
더욱 들뜨게 했다. 그녀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난 목욕탕으로 간다. 지나는 사람사람이 모두 사랑스럽다.
만화방 아가씨 : 오늘은 다른 날보다 조금 일찍 일어났다. 지금 만화방을 열자니 너무 일찍다. 그래
오늘은 아예 문열지 말자. 몸도 나른한데 목욕이나 가야겠다.
백수 : 목욕탕 안 모든 사람이 발가벗고 있다. 그래 사람은 모두 평등하다. 벗겨놓으면 이렇게 다 똑
같은 사람인걸.. 괜한 용기가 생긴다. 열심히 삽시다 여러분...! 괜히 소리질렀나..? 저기 어떤 꼬마가 "
아빠 저 아찌 백순가봐.." 그랬다. 그래도 사랑으로 들뜬 내 기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그 꼬마녀석이
오히려 귀얍다.
만화방아가씨 : 목욕을 하러 가는데 남탕 쪽에서 백수 그녀석이 나왔다. 얼른 근처 전봇대 뒤로 숨었
다. 다행히 그녀석이 반대방향으로 갔다. 후후 저 녀석 자기가 깨재재하다는 걸 이제사 느꼈나보다. 목
욕을 하는데 그 녀석 생각이나 자꾸 웃음이 나왔다. 그걸 보시던 어떤 할머니가 "새댁 남편이 잘해주
는가 보구려.. 좋을 때지.." 그런다. 우쒸 할머니까지 날 아줌마로 보다니.. 괜히 웃었다가 할머니 등만
밀어 주었다.
백수 : 그녀가 극장 앞 영화시작하기 한 시간 전에 만나자고 그랬었다. 그런데 그런데.. 4회 표인지는
알겠는데 몇 신지 모르겠다. 그녀가 표를 가지고 있으니... 에라 모르겠다. 뭐 좀 일찌기 서두르자. 힘
겹게 잡은 약속인데 늦을 수야 없지..
만화방아가씨 : 오전엔 만화방을 청소했다. 그리고 오후에 시간이 많이 남았다싶어 미장원을 갔다. 머
리 손질도 좀하고 코팅도 좀 해야겠다. 기분 좋은 토요일.. 여유로움 속에 나 조금은 들뜬 마음으로 시
간을 재촉하고 있다.
백수 : 영화관 앞 사람들이 많다. 이 영환 종영이 이번 주인데도 불구하구 사람들이 많다. 사람들이
모두 나처럼 들뜬 기분일까..? 극장 앞 스피커에서 방송이 나왔다. 졸라 큰 배 3회 입장객들 입장해주
세요... 에게 이제 3회 시작하는가벼.. 할 수 없이 근처 앉을 곳을 찾았다. 영화관 구석진 곳에 앉기 좋
은 곳을 찾아가 앉았다. 그녀가 조금 있으면 올텐데.. 이거쯤 못 기다리랴.. 근데 시간이 넘 안 간다.
그녀와의 추억을 생각하며.. 에....생각하니 별루 없다. 긴장되던 맘도 시간의 여유로움 때문이었을까..?
슬 잠이온다.
만화방아가씨 : 미장원에 손님이 꽤 있다. 내 차례를 기다렸다. 좀 시간이 많이 지나갔다. 내 차례가
되어 머리손질을 받고 코팅 젤을 발랐는데... 이게 왜 이리 안 마를까...점점 약속시간이 다가온다. 내
마음이 자꾸 조급해 졌다. 집에 와 나갈 준비를 하고 문을 나서며 시계를 보니 벌써 약속시간이 지났
다. 그래도 그나마 영화 시작 전까지는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 근데 그 녀석 속이 엄청 좁은걸 안다.
도착해서 뭔 소리 들을 거 같다. 이그 화상아 조금 일찍 서두르지..
백수 : 그녀가 저기 멀리서 달려온다. 그리고 내 품에 안긴다. 그녀의 맑은 눈에 내 모습이 잠겨 있다.
이리와 지윤..! 우리 심심한데 뽀뽀나 할까..? "아이 바보.. 움~(입 내미는 소리)" 근데.... 갑자기 누군가
나를 쳤다. 라거 파는 놈이면 주겨 버릴껴..그래서 엄청 짜증을 내며 쳐다보았다
만화방아가씨 : 다행히 영화 시작 전에는 도착했다. 그렇지만 약속한 시각에는 한 한 시간 가량 늦었
다. 그가 뭐라 그럴지 모르겠다. 그 녀석을 찾았는데 없다. 이 속 좁은 녀석이 그냥 가버린 거 아녀..?
근데 저기 어디서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킥킥 웃는다. 그래서 가보았다. 그녀석이 이상야릇한 표정을
지으며 팔짱을 낀 채 앉아 피사탑처럼 자구 있다. 쪽이 팔림이 느껴져 온다. 그래도 한편으론 그녀석
이 마니 귀여워 보였다. 살며시 다가가 그를 깨웠다. 그리고 늦어서 미안하다고 그럴려구 했는데 우쒸
그러며 짜증을 냈다. 아마도 내가 늦은 게 짜증이 났나보다.
백수 : 그렇게 꿀려고 노력을 해도 나타나주지 않던 지윤 씨가 꿈에 나타났는데.. 그 것도 결정적인
순간에 누가 날깨우는겨..? 고개를 들었다. 눈이 확 뜨였다. 지윤씨가 내 눈앞에 있는 것이 아닌가..? 오
늘따라 더욱더 화사하고 이쁘다. 근데 그녀가 왜 내 눈 앞에 있는 거지? 주위도 너무 낯설다.. "지윤
씨.. 여기 왠일이에요..?"
만화방아가씨 : 여기 왠일이에요? 한시간 늦은 걸루 몹시도 심하게 삐졌나부다. 진짜 상당히 속이 좁은
놈이다. 그래도 내가 잘못한 거니 할 수 없다. 늦어서 미안하다고 그래야 겠다.
백수 : 아..맞다. 그녀와 영화보기로 했지. 그것도 잊어버릴 정도로 깊이 잠들어었나 부다. 지금이 몇시
여..? 시계를 봤다. 맙소사 내가 세시간이나 잤단 말여..? 그녀를 보니 어이없다는 표정이다. 날 많이 찾
아 헤맨 거 같다. 좀 찾기 쉬운데 앉아 있을걸.. 이걸 어쩌나..? 빨리 사과를 해야겠다.
만화방아가씨 : 이제는 시계까지 쳐다본다. 니가 도대체 얼마나 늦은 건지 알어? 그렇게 묻고 있는 거
같다. 저런 녀석한테 잘 보일려고 내가 미장원까지 가서 그 고생을 한 걸까..? 짜증이 날려고 한다. 늦
어서 미안하다는 말이 목젖까지 나오다 말았다. 근데.. 그녀석이 대뜸 조금은 더듬거리면서 여기 졸구
있는 나 찾느라고 많이 헤매지 않았냐며 미안해한다. 그리고 그냥 가버리지 않고 찾아 주어서 고맙다
고 까지 한다. 나 참... 바보라고 해야하나. 착하다고 해야하나..
백수 : 이거 첫 만남인데.. 왜 이러냐 화상아.. 처음부터 이런 백수이미지를 줘버리다니..싹싹 빌며 사과
를 했다. 다행히 그녀가 화가 풀린 거 같다. 그녀가 씨익 미소를 지어 보여주었다. 휴... 그녀는 생각한
것처럼 성격이 가스통인거 같지는 않다. 그냥 가버리지 않고 날 끝까지 찾다니.. 다행히 영화 시작 전
에 찾았구나. 다시 한 번 그녀가 사랑스럽다.
만화방아가씨 : 조금 황당하다. 그녀석이 먼저 사과를 하다니... 혹시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 녀석 머쩍해 하는 얼굴을 보니 너무 순진해 보인다. 일부러 그러는 거는 아닌 듯 싶다. 그렇
게 생각하니 그녀석이 왠지 사랑스러워 보였다. 웃음두 나구... 계속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길래.. 괜찮
으니까. 앞으로 그 일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자구 그랬다. 좀 맘이 찔린다.
백수 : 얼굴만 이쁜 게 아니라 맘씨도 착하구나.. 하하. 그녀가 날 위해 팝콘하구 음료수도 사왔다. 음
너무 황홀하다.
만화방아가씨 : 뻔히 다음장면이 뭐 나올지 아는 이 영화가 기대되는 건 이 녀석이 지금 내 옆에 앉
아 있기 때문일까..? 녀석이 팝콘을 혼자서만 먹고 있다. 광고 보면서 저렇게 껄껄거리다니.. 결국 영화
예고편도 시작하기 전에 그 많은 팝콘 다 먹어 치웠다. 분위기 없는 놈... 영화같은 데 보면 팝콘 먹다
가 손이 겹치는 애틋한 장면도 연출되는데.. 먹어보라 소리도 한마디 안 했다. 독한 놈. 이럴 줄 알았
으면 두개를 사는 건데 그랬다.
백수 : 그녀가 지금 내 옆에 앉아있다. 뭔 말을 하고 싶은데 할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괜히 팝콘만 주
섬주섬 주워먹었다. 이거 디게 맛없네.. 이런걸 이 천원 이나 바다쳐먹는단 말여.. 사람들이 광고를 보
고 웃는다. 머쩍어서 따라 웃었다.
만화방아가씨 : 이다음 장면이 찡한 장면인데 그 녀석 표정은 과연 어떨까..? 가만히 그를 쳐다봤다.
하하. 사내자식이 징징 짤려고 한다. 씩 그녀석이 나를 쳐다봤다. 이런 장면에서 내가 웃으니까 이상하
다는 듯 갸우뚱거린다. 좀 머쓱하구먼..
백수 : 너무 찡하다. 눈물이 날려고 한다. 흠흑.. 그녀도 지금 눈물이 나려할까..? 한번 쳐다봤다. 나와 눈
이 마주쳤다. 그녀가 쿡쿡 거리다가 흠침 놀라 스크린으로 눈을 돌렸다. 내가 징징거린게 저 찡한 장면
을 완전히 압도해 웃겼나보다. 쪽팔려라.. 사내는 우는 게 아닌가 보다.
만화방아가씨 : 이 녀석 그때도 느꼈지만 여린 면이 많은 거 같다. 내가 눈시울 지었던 장면에서는 어
김없이 징징거릴려고 했다. 나올 때 손수건을 말없이 건냈다. 근데 눈물 닦으라고 준건데.. 이 녀석이
자기 뒷 주머니에다 넣어버린다. 체면에 달라고 할 수도 없고.. 비싼 건데.. 하지만 별로 아깝지는 않다
백수 : 그녀가 이쁜 손수건을 나에게 주었다. 무슨 의미일까..? 비싸 보인다. 고히 간직하겠다고 속으로
말하고 주머니에 넣었다. 다음에 더 좋은 걸루 사다가 선물해야겠다.
만화방아가씨 : 영화가 끝났다. 그녀석이 스테이크 먹으러 가잰다. 돈도 없는 게.. 영화가 생각보다 길
었다. 시간도 10시가 거의 다되어 간다. 이 시간에 무슨 스테이크하는 데가 있다고... 근처에 그럴싸한
찻집이 있다. 다음에 스테이크 사라고 그러고 정 아쉽다면 차나 한 잔 하자고 했다.
백수 : 그녀 스테이크 사 줄려고 아버지가 숨겨 논 10만원 꽁친 거 그냥 갖다 넣어두게 생겼다. 차나
한 잔 하자구 그랬다. 흠 그것두 좋지. 영화 끝나자마자 집에 간다고 그럴까봐 가슴 졸였는데.. 조용한
찻집에서 그녀와의 대화. 드디어 그녀와 나와의 공유된 기억을 갖게 되는 건가..
만화방아가씨 : 찻집 안에서 별말 없이 너그러운 시간이 간다. 무슨 말을 할까..? 잔잔한 음악이 흐르
고 분위기는 좋은데 아직 그 녀석과 나는 어색한가 보다. 만화방 올 때 잘해줄걸 그랬나..?
백수 : 뭔 말을 해야하나.? 하지만 이렇게 그녀를 바라보는 것만도 너무 기분이 좋다. 주위에 연인들이
하나도 안 부러운 건 그녀가 내 앞에 있기 때문이지. 조명등 하나하나가 그녀를 위해 나리는 별빛 같
다. 자꾸 가슴이 떨려오는 것도 내 앞에 그녀가 날 위해 앉아있기 때문이지. 잔잔히 흐르는 음악 한음
한음이 그녀를 위해 떨리는 내 마음조각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