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움의 방석 깔았을때
늦겨울 최후의 발악.
꽃샘추위도 서서히 봄기운에 못이겨 물러가나보다.
지난 겨우내 꽁꽁 얼어붙었던 우리네 마음까지 살살 녹아 내리고 있고,
오늘 한사람을 통해 그 따뜻한 봄기운을 느껴본다.
안산 관산 도서관 인터넷 체크하는 아주머니.
들어 설 때마다 차가운 겨울 바람 생생 불었는데, 오늘 왠일인가?
정확한 시간과 싸늘한 얼굴표정이 봄바람에 살살 녹고 있나보다.
"오늘은 자리가 비었으니 더 하시고 가세요. 오랜만에 오셨는데."
그 한마디가 오늘 하루의 삶을 따뜻하게 해주었다.
아직 쌀쌀한 추위가 가시지 않아 몸을 움츠리게 하지만,
한 사람의 포근한 옷깃이 마음을 덮으니 참 푸근한 정이
내마음의 난로가 되어 따뜻하다.
따뜻한 인간의 정은 부드러움에서 느낄 수 있나보다.
아니, 딱딱함과 부드러움의 역설과 조화속에서 살포시 인정의
꽃봉오리는 피어 오르나보다.
알파부터 오메가까지 한없이 부드럽기만 한다면
그 부드러움의 안락을 느끼지 못할 것이고,
반대로 딱딱한 의자 되어 놓여 있다면
엉덩이 아파 무척 짜증이 나지 않겠는가?
두 상극이 존재하는 공간속의 긴장감!
이것이 우리 나그네길의 아이러니인가보다.
선과 악의 긴장감.
진리와 거짓의 긴장감.
이 긴장감이 우리 생각과 판단의 영양제가 되어
상상력과 창조성을 키워 나가나보다.
어쩌면 우리의 생명에 대한 본능적 욕구를 자극하여
삶에의 욕구를 부추기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의 믿음과 신앙을 깨우는지 모른다.
어쨌든 이 두 긴장감이 시기적절히 발휘될 때
인간 사는 재미와 맛이 날것 같다.
딱딱한 의자와 같은 우리의 마음에 부드러움의 방석을 깔았을 때
사람들은 나를 찾아 그 엉둥이 들이밀지 않겠는가?
부드러운 방석이 되자.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그 부드러운 방석이 무엇인지를 잘 말씀해 주고
있는 듯 하다. 온유과 겸손.
딱딱한 의지와 같은 내 속사람 위에
온유과 겸손으로 방석을 깔아보자.
그리고 나와 관계되는 수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방석있는 의자가 되어 그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하자.
나로 인하여 당신이 쉴 수 있다면
그로 인해 나는 행복하리라.
내가 주님으로 인해 행복해 하였듯이.
(엇저녁에 썼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