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모기의 방해 없이 공원벤치에 나 앉을 수 있는 짧디 짧은 계절이다.
봄 중에서도 제일 좋은 1등급 봄이다.
조금만 더 지나면 아이스크림을 하나 다 여유롭게 먹지 못할만큼 숨가쁜 더위가 밀려올 것이다.
시원한 밤바람에 홀려 둘이 아이스 크림을 한통 다 비우고 앉아서, 이 좋은 계절은 하필 너무 짧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지금보다 좀 더 길었다면 1등급 대접을 받지 못했을 것 같다.
나는 요즘 장담했던 것들에 대해 "어, 아니네.."하며 멋적게 머리를 긁적이고 있다.
뭐, 이런거다.
저 사람은 더 볼 것도 없이 정말 별로다 백년을 더 봐도 아니다 정말- 하거나 아니면, 이 사람은 참 본받을 것만 투성이다-. 했던 주제넘은 판단들이나. 앞으로 이 일은 절대 잊을 수 없다거나, 혹은 두번 다시 이 일은 떠올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거나 하는 근거 없는 판단이 자꾸 엇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살다보니 함께 웃을 수 없을 것 같은 사람과 허리를 젓혀가며 웃고있고, 용서 못할 것 같은 사람과 있었던 일도 잊어버렸고, 또 두번다시 생각하지 못할 것 같은 기억을 덤덤히 떠올리기도 한다.
생각해보니, 좋은 방향으로는 장담을 많이 하지 않았던 것 같아서 장담한 것과 반대로 되어간다는 것은 참 다행인 일이다. 또 감사한 일이다. 1등급 봄 바람 덕분인지 문득 행복하게 살고 있음을 깨닫게 되는 날이다.
삶의 행복도를 측정할 때 쓰는 척도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이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하다고 말하는 대표적인 몇가지를 확실히 지금의 나는 누리지 못한다.
나는 심각한 수면 부족에 시달리기도 했고, 노예 대접과 격무에 시달리고, 그렇다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신분도 아닌 이유로 월세와 각종 공과금에 쫒겨 아슬아슬 살아가고 있다.
그러다 문득 1등급 봄처럼 찾아온 오늘에 나는 상당히 높은 수준의 삶의 만족도를 느끼고 있다.
나는 오늘의 이런 생각을 앞으로 계속 유지할 거라고는 장담 못하겠다. 장담은 늘 나를 배신하기 때문이 . 오히려 그렇지 못할 확률이 더 높을 것 같다. 그래서 그냥, 이런 생각도 했었다고 오늘을 기억하려고 한다. 1 등급 봄바람은 금새 그치지만 어쨌거나 다시 불어오게 되어 있으니까.
힘빼고 살자, 힘빼고,
너무 좌절하지도 말고, 약올라하지도 말고.
내가 장담한 것이 늘 변했던 것처럼.
시간 지나면 처음모습과 달라져있겠거니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