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정말로 이렇게 길고도 실제같은 악몽은 처음 꿔 본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도 전에 그녀의 어머니가 학교를 다녀가신게 화근이 되었나.
난 아까의 그 악몽을 내 머리속에서 지워버릴려구 손을 깍지끼고 기지개를 켰다.
물론 교수님한테 안 들키게. 난 창가에 앉아 있었는데, 기분전환도 할겸, 안도의 한숨도 쉴겸, 햇살이 비치는 창밖을 쳐다보았다.
학교 교정은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난 눈길을 교문쪽으로 돌렸다.
교문은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학생들이 하나 둘 오가는 평온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 교문..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난 아까 꿈 속에서 봤던 삼촌의 새단이 있던 자리를 바라보며, 몸을 한번 부르르 떨었다.
그게 현실이 아니라 꿈이었다니, 실로 그렇게 긴 꿈은 처음이었다.
난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며 얼굴에 안도의 웃음을 띠며 그녀의 손을 꼬옥 잡았다.
그녀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따라웃었다.
'쿠구궁........'
그런데 바로 그때, 창밖 어디선가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내 몸을 틀어 창밖을 바라보았다.
' 앗.......'
내 몸은 순간 굳어버렸다. 교문쪽이 어두워지면서, 그 너머로 검은색 새단 수십대가 학교로 돌진해 들어오고 있었다.
난 재빨리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알아차리고, 웅성거리는 사람들 사이로 그녀의 손목을 붙잡고 재빨리 문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뿔싸, 문에 도달하기 전에 문이 안쪽으로 너머지면서, 저승사자의 옷을 입은 그녀의 삼촌이 도끼를 들고 그 앞에 나타났다.
' 너 이놈. 내가 한번만 더 성미 만나면 죽인다고 했지.'
그녀의 삼촌은 도끼를 휘두르며 우리 쪽으로 달려왔다.
나는 그녀와 함께 재빨리 방향을 바꿔, 창문틀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우선 그녀를 올려주고 내가 발을 창틀로 올려 몸을 바깥쪽으로 돌리는 순간, 삼촌의 도끼가 내 발 바로 뒤의 창틀을 둔탁하게 찍었다.
창문밖은 아까의 화창한 날씨와는 다르게, 먹구름이 짙게 깔리고 바람이 심하게 불며 번개가 치고 있었다.
난 창틀에 올라 유리창에 기대어 서서, 재빨리 그녀를 창문과 마주하지 않은 틀 쪽으로 움직이게 했다.
그리고 나도 세찬 바람을 지탱하며 그쪽으로 한발씩 두발씩 조심스럽게 발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몇초를 옆으로 움직인 순간, 갑자기 어디선가 굉음이 들리며, 우리의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우르르.......'
우리를 중심으로, 양 옆에서 부터 창틀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난 순간적으로 왼손으로 그녀의 몸을 껴안은 다음, 떨어지는 순간에 손 잡을 정도 남은 창틀의 조각을 오른손으로 있는 힘을 다해 겨우 부여잡았다.
한손으로 허공에 매달려, 언제 떨어질지 몰라 안절 부절 하며 위를 쳐다보는데, 그녀의 삼촌은 벌써 창문 위에 올라 서서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 너 이놈. 내가 한번만 더 성미 만나면 죽인다고 했지. '
검게 그늘이 져 보이지 않는 그의 얼굴 사이로, 그의 눈이 빨갛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사후 그는 도끼로 있는 힘을 다해 나의 왼손가락을 찍었다.
'아아아악~~~~~~~~~~~'
나의 손가락은 여지없이 잘라졌고, 새빨간 피가 손가락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나와 그녀는 밑이 보이지 않는 학교 건물 아래로 계속해서 , 계속해서 떨어져 갔다. 그녀의 비명소리와 나의 비명소리가 온 학교에 울려 퍼진다.........
.
.
.
.
'따르르르르르릉........'
나는 번쩍 눈을 떴다. 그리고 내 잘린 왼손을 만져봤다. 왼손가락은 아직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듯 했다.
꿈이었다. 내 몸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그녀 곁에서 이야기를 해 본지도 벌써 15일이나 지난 것 같다.
그녀의 삼촌-엄밀히 말하면 그녀 아버지와 사업상의 관계 때문에 의형제를 맺고 서로 상부상조하며 그녀 아버지를 형님이라고 부르며 따르는 건달-은 프로 중 프로였다.
강남에 있는 어느 나이트클럽 똘마니에게 그 이름만 말해도 부르르 떨만한 대규모 폭력조직의 부두목이었으니까.
그는 특히 맡은일의 뒷처리가 확실한 것으로 그쪽 방면에서 유명한 인물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한번 겁주는 걸로 끝내지 않고, 확실하게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 그날 이후로 그녀 곁에 학생복을 입은 경호원 한 명을 배치했다.
말이 경호원이지, 그녀가 나와 학교에서 만나 이야기를 하나 안하나 감시하기 위해서 배치한 감시자나 다름없었다.
이 친구가 그녀를 차에 태워 학교에 데려오고, 학교가 끝나면 곧장 차에 태워 집에 데려갔다.
그리고 학교 내부에서 일어날 수 있는 만일의 사태, 예를 들어 내가 친구들을 동원하여 그녀를 그 경호원으로부터 폭력을 써서 빼앗아가는 사태를 미연에 대비하고자, 역시 학생복을 입은 조직폭력배 10명을 학교 곳곳에 그녀가 눈치 채지 못하게 배치했다.
그 악몽이 벌어진 며칠 후 내가 학교에서 그녀와 마주쳤을때, 그녀가 나를 본채도 안하고 도망가길래 왜 그러나 궁금해 했었는데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나도 그녀가 이 사실을 삐삐 음성으로 남겨주기 전까지는 전혀 알 수가 없었으니까.
그리고 삼촌과 엄마가 대화하는 것을 들었다는 그녀 말에 의하면, 엄마가 삼촌에게 내가 만약 그녀 곁에 다가오면 다리를 하나 분질러 놓으라고 부탁도 했다고 한다.
이런 그녀의 음성 메시지를 들은 이후, 나는 학교에서 그녀를 마주쳐도 그냥 멀리서 눈길로 대화를 할 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혹이나 내가 다가가려 해도, 그녀가 지레 겁을 먹고 반대 방향으로 달아났다.
그리고 같이 듣는 수업은 그녀가 들으러 오지 않았다.
아마도 그녀 어머니가 못 들어가게 한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겨울 방학을 한 달 남겨둔 시점에서, 서로 쳐다는 볼 수 있으면서 가까이 다가갈 수는 없는 그런 사이가 되어 버렸고, 그렇게 무작정 시간만 15일이나 흘러간 것이다. 우린 오직 삐삐 메시지를 통해서만 서로의 안부를 묻고 사랑을 속삭일 수 있었다.
오늘도 그녀는 목요일 마지막 수업 '인간과 심리'를 듣고, 그녀 친구와 함께 강의실을 빠져 나왔다.
난 교문 근처에 있는 학교 캠퍼스 잔디밭에 앉아 이어폰을 귀에 꼽고 책을 보는 척 하면서 그녀의 얼굴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그녀 역시 어제 내가 남긴 음성으로 내가 여기 있을 것을 아는지, 나를 먼 발치에서 바라보며 학교 교문쪽으로 걸어갔다.
그녀의 얼굴은 지금까지 내가 본 그 어느때 보다도 더욱 예뻐 보였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예쁜 얼굴 한 구석에는 알 수 없는 슬픔이 서려있었다.
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자신이 정말로 한심스러웠지만, 이렇게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나마 내가 사랑하는 그녀를 바라볼 수 있다는 데 대해서 하늘에 감사하게 생각했다.
' 방법이 생길꺼야..방법이.. 방법을 찾아보자..'
교문 너머에서 새단을 타고 내 시야에서 사라지는 그녀를 바라보며, 나는 엉덩이를 툴툴 털고 잔디밭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녀가 떠나간 빈 자리를 담담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교문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아직 호프집 아르바이트까지 한시간 정도 남아있었으므로, 학교 근처 만화방에서 그 시간을 때우기로 결정했다.
난 워크맨의 볼륨을 더욱 크게 높이며, 어떻게 하면 그녀를 다시 내 곁으로 오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음악에 맞추어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만화방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 만화방에 거의 다다랐다고 생각했을 무렵이었다.
'끼이이이익............'
난 차에 치어 죽는줄 알았다. 차가 내 앞으로 돌진해 온 것이다. 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자 가슴에 손을 올려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우선 내가 무언가를 잘못했나 생각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