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도취 - 김 서린
어느날 난 아주 특별한 사람이 되어있는 느낌이었어.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이긴 마찬가지인데
찻길 쪽은 갑자기 차가 뛰어 들어올지도 모른다며
넌 날 너의 오른 편에 꼭 세우는거야
큰 신호등이 노란불만 되면 난 벌써 발을 건널목에 내려놓곤 했는데
넌 빨간불이 파란불로 바뀌고도 한참 후에야 건너야한다며 잔소리를 하는거야
그러니까 난 내가 무지무지 중요한 사람인 것처럼 느껴지는 거 있지
아침마다 전화해서 깨워주고 잠에 취해 짜증부리면
내가 완전히 잠에서 깨어날 때까지 말을 걸어주고
그러고는 꼭 아침을 먹으라고 챙겨주는 니가 난 너무 좋은거였어
내가 외출하는 날이면 해가 지기 전에 돌아올 것을 약속해야 하고
약속한 시간에 5분만 늦어도 불안에 떨다가 내가 나타나면
무사히 돌아와서 고맙다는 니가 어떤 때는 너무 심하다는 생각을 하지만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느끼면 기분이 되게 좋은거 있지
우리집 전화가 좀 길게 통화 중이었다 싶으면
어떤 놈하고 전화했느냐고 투정부리는 니가
막 안아주고 싶은거야
옷가게에서 내가 고른 치마길이가 눈꼽만큼도 짧지 않은데
무릎만 조금 보이는 것같으면 눈살을 찌푸리고 끝끝내 바지를 사들고 나오게 하며
넌 바지 입으면 엉덩이가 너무 이뻐 하고 웃는 니가 막 사랑스러운거야
니 친구들이랑 어울리는 자리에서 친구들 애인보다 월등하게 이뻐서
기분 좋아하는 너 때문에 행복한거야
니 친구들이랑 나랑 부르스추자고 하는데 절대 안된다고 나를 숨기고
몸 약하다고 술은 입에도 못대게 하고 너랑만 부르스추자고 하고
그렇게 나를 너무 아껴주니까 내가 열심히 너를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거 있지
너한테 야단맞고 길거리에서건 어디건 훌쩍거리고 우는 나한테
왜 길에서 창피하게 우느냐고 화내면서도
손으로 내 눈물 닦아주고 내 머리 쓰다듬어주는 너한테 난 한참 전에 중독된거 있지
버스 안에서 나보다 훨씬 이쁜 여자가 화장도 기차게 세련되게 하고
옷도 어디 옷가게 옷인지 착착 달라붙게 잘입은 여자를 보고 내가 주눅들어 우울해하면
사람들 다 듣게 너 왜 이렇게 이쁘니 난 너처럼 이쁜 여자는 처음 봤어하며
내 얼굴을 막 비비는 니가
그때는 후줄그레한 내 옷차림과
화장기없는 일그러진 내 얼굴이 창피해서 잔뜩 눈을 흘겼지만
사실은 그렇게 말해주는 니가 너무너무 좋은거였어
정말 세상에 나보다 더 이쁜 여자는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거 있지
맨날 맨날 두세번씩 왔다갔다 하는 길인데
밤이나 낮이나 넌 너무 이뻐서 누가 잡아갈지 모른다면서 악착같이 바래다 주는 너 때문에
어느날 정말루 정말루 라면이 먹구 싶어서 라면 먹자고 했는데 내가 돈이 없어서 그러는 줄 알고
난 실은 칼질이 서툴러 서양음식 싫어하는데 레스토랑에서 고기를 썰게하는 너 때문에
처음으로 빨간루즈 바르고 마스카라하고 너한테 자랑하려고 이쁘냐고 물었더니
너무 섹시해서 남정네들이 날 가만히 안둔다며 누가 따라오며 시비 걸지도 모른다며
당장 지우게 하고 말던 너 때문에
난 정말 내가 너무나 대단하고 너무나 특별한 사람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진거 있지
파마하는 것두 너한테 허락받아야 하구 머리 자르는 건 끔찍하게 질색하는 너 때문에
지겹게 생머리만 고수하고 있는 내가 왜 이렇게 됐나 가만히 생각하니까 너무너무 웃긴 거야
난 너 때문에
난 너무 이쁘구 너무 사랑스럽구
그리구 난
대통령보다 최진실보다 더 특별한 사람이 된 것같은 거야
내가 왜 이렇게 됐나 물으니까 니가 그랬지
그건 우리가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정말 근사하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