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역 앞 상가
전자 대리점 대형 티브이에선
화려한 연말 시상식이 중계되고
근처 후미진 귀퉁이에
종이상자를 깔고 신문지를 덮어쓴
노숙자 김 씨가 꽁꽁 얼어붙은 채
까무룩 꺼져가는 정신 줄을
스피커 소리에 간신히 매달고 있었는데
재벌 집 씨받이를 성공적으로 완수한
미스코리아 출신 잘나가는 여배우의
오만하고 자신만만한 소감을 듣고
쌍욕을 퍼붓지 않을 수 없었다
저런 십장생 개나리 같은 것이
배가 불러 터질 것 같으니
잔치판에서 토악질을 하는가
망둥이가 뛰니까 꼴뚜기도 뛴다더니
누구는 세상 전부인 가족과 생이별하고
아귀 같은 빚쟁이들을 피해 시작한
노숙이 삼 년째인데
밑바닥 인생이 천만에 육박한다는데
저런 망발을 마구 질러대다니
이제 양극으로 벌어져 갈 데까지 간
이 세상에 과연 희망이 있는 건지
벌레 같은 인생들은
이대로 조용히 꺼져가야 하는지
창자를 파고드는 분노를 마시며
쪼그랑 동태가 되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