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난이대'는 고등학교 1학년 국어시간에 접해본 적이 있는 소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소설을 다시 손에 들었다. '수난이대'라는 소설 속에 나오는 두 인물인 '만도'와 '진수'. 나는 이 두 인물을 잊지 못할 것 같다. '만도'와 '진수' 이 두 인물은 허구적인 인물이지만 소설의 배경은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6·25)'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만도'와 '진수'가 겪었던 아픔.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경험했던 우리 민족의 아픔을 '만도'와 '진수'라는 인물을 통해 다시 보는 듯 했다.
만도와 진수는 한쪽 팔과 한쪽 다리가 없다. 만도는 일본에 의해 강제 징용 당하고 징용지에서 한쪽 팔을 잃는다. 그리고
그의 아들 진수는 한국전쟁에 참전해 한쪽 다리를 잃게 된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만도 부자는 이렇듯 큰
아픔을 겪었다. 불구가 되어 돌아온 아들에게 만도가 처음 내뱉은 말은 "에라이, 이놈아!"였다. 그것은 자신도 불구인데 아
들녀석 까지 그런 모습을 하게 된 것에 대한 분노였다. 아들 진수에 대한 분노일 수도 있고, 진수를 그렇게 불구로 만들어
버린 시대에 대한 분노일 수도 있다.
두 부자는 서로를 의지한 채 집으로 돌아간다. 두 부자는 서로에게 모자란 팔과 다리가 되어 준다. 이런 끈끈한 부자간의
정을 더욱 돈독하게 해 준 것은 외나무다리와 고등어였다. 진수는 팔이 불편한 아버지를 위해 만도가 들고 있던 고등어
한손을 자기 손에 든다. 만도는 외나무다리를 만나자 다리가 불편한 아들을 위해 진수를 엎는다. 만약 고등어와 외나무다
리가 아니었더라면 어떻게 만도 부자의 정을 확인시켜 줄 수 있었을까.
"이래 가지고 나 우째 살까 싶습니더." 이런 진수의 말에 만도는 이렇게 말한다. "우째 살긴 뭘 우째 살아? 목숨만 붙어
있으면 다 사는기다. 그런 소리 하지 마라." 소설의 심리적 전환 부분이라고 해서 중요하게 배웠던 부분이다. 두 부자는 자
신들의 아픔을 극복해 내려는 의지를 보인다. 그리고 이것은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곳에서 나는 만도
부자의 낙관적인 삶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만도'와 '진수'는 운명론자들 같다.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새로운 삶의 방법을 모색하려 했던 만도와 진수. 어차피 이렇게
된 일이니 그냥 받아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을 지 모른다. 내가 만약 만도 부자였다면 아마 정 반대의 결단을
내리고 말았을 것이다. 만도 부자의 이런 운명론적인 모습은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잘 나타나 있다. 소설 속에서 보여준 '
만도'와 '진수'의 낙관적이고 운명론적인 삶의 태도는 작가 자신의 가치관이 반영된 것인지도 모른다. 비극적 상황에서도
그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려 하는 태도. 소설 속에 작가의 가치관이 조금도 들어가지 않았다는
말은 할 수 없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런 긍정적 가치관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무슨 일을 하든 최악의 상황을 먼저 생각하고 행동
하는 버릇이 있다. 이것이 꼭 나쁘다고 할 수 없겠지만 그렇다고 좋다고 할 점도 못 되는 것 같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이라는 큰 비극을 경험했던 '만도'와 '진수'. 이들의 긍정적 가치관을 배우는 것이 때론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의 아픔을 극복하고 일어서는 만도 부자의 뒷모습이 내 기억 속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