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순의 작가 박완서님의 장편소설『아주 오래된 농담』이 제목처럼 낭만적이고 푸근한 이미지로 내게 다가왔다.
소설로 등단한 지 30년째이며 칠순에 접어든 노작가의 섬세하고 세련된 문필로 다듬어진 이 소설은 어설프게 작가의 많은 나이만을 의식했던 나의 예단을 여지없이 비켜나갔다.
소설의 핵심은 추억이나 낭만과는 거리가 먼, 돈과 여성 억압적인 현실이 죽음과 사랑, 탄생까지도 왜곡시켜 버린 우리네 삶의 현실을 냉정하게 묘파(描破)하고 있다. 초반부에 숨가쁠 정도의 속도로 등장인물들에 대한 소개를 끝낸 뒤, 작가는 다시 숨을 고르면서 젊은 작가들조차 구사하기 힘든 세련된 화법으로 대사 위주의 이야기 전개에 돌입한다.
이 소설속의 배경과 인물은 모두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을 준다.가족에 관한 이야기가 더욱 그러한데, 특히 어머니에 대한 묘사는 작가의 소설이나 수필에 자주 등장하는 꼿꼿하고 자존심강한 어머니의 상 그대로다. 작가의 유년시절 기억이 그녀의 모든 작품을 지배하고 있는데 이번에도 어쩌면 그렇게 낯익은 캐릭터와 줄거리를 가지고도 이렇게 새로운 작품을 쓸 수 있는지 대단하고 감탄스러울 뿐이다.
줄거리를 요약하면 주인공 의사 심영빈은 어린시절 동창생이며 흡모의 대상이었던 \"현금\"에 대한 추억을 가슴에 품고살던 중 우연히 이혼한 그녀를 만나 불륜의 밀회를 즐긴다. 아버지가 자살하고 유복자이며 늦둥이로 태어난 영빈의 막내동생 영묘는 자칭 재벌가의 아들과 결혼하지만 시댁의 철저한 이기주의로 생활비마저 오빠인 영빈에게서 도움을 받는다. 연년생 아들을 낳은 영묘는 결혼 3년만에 남편 송경호가 폐암에 걸려 사경을 헤매다 죽는다. 부잣집에 며느리로 들어가 남편이 죽기까지 시댁 가족들로부터 당하는 영묘의 고통을 통해 재벌가의 아들에 대한 죽음조차 철저하게 상업적이며 속물적인 기획으로 몰고가는 가진자들의 천민성을 고발한다.
이 책에는 \"여성 잔혹사\"와 \"돈\"이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 자본주의 비판과 페미니즘을 접목시킨 듯이 보이지만 자본주의라기보다는 천민자본주의 이야기고, 페미니즘이라기보다는 약간의 현실반영 정도로 느껴진다. 천민자본주의를 대변하는 영빈의 누이동생 영묘의 시댁은 그 전형을 보여준다. 아들의 생명보다는 체면을 중요시하고, 과학보다는 무속에 의지하는 그들의 생활은 재벌의 생활상을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이 책을 통하여 천민자본가의 생활상을 반추할 후 있었다.
교사이며 고등학생인 두 딸을 둔 영빈의 아내 수경은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남편을 두고 있음에도 딸만 낳은 여자의 조급함 끝에 남편 몰래 영빈의 친구 의사에게 두 번의 낙태를 거쳐 아들을 출산하고야마는 질긴 가부장제의 현존을 보여준다. 인생에서 가장 엄숙해야할 의식인 죽음과 탄생조차도 재력의 유지와 남아선호의 현실에 작가는 절망과 분노로 피력한다.
나 자신도 작가의 남아선호 현실에 대한 유감적 필력에 동감하며, 아들을 갖고 싶은 욕망에 두 번의 낙태를 거쳐 늦둥이를 낳는 수경의 이미지를 되돌아본다. 시어머니와 갈등도 별로 없고 남편인 영빈과 정열적인 사랑은 못해봤다 치더라도 부족함 없는 생활을 하고 있는데 수경 스스로 암묵적인 아들 낳기 압력이 가해지고 있다고 느끼고 이미 딸 둘이 있는데도 그렇게 아들 낳기를 소망하다니 우리 나라의 아들 중시풍조가 심각해서 현실을 반영했다 하더라도 또 그것이 여자가 무시할 수 없는 압력이라 하더라도 불만스럽게 비쳐진다.
영빈은 재벌가의 미망인 맏며느리인 동생 영묘의 감옥과도 같은 고통의 연속적 생활에 대한 자신의 무기력함으로부터 이혼녀 현금의 품으로부터 위안을 얻는다. 그러나 현금은 영빈에게 있어서 영원한 피안의 존재는 아니었다. 영빈과 현금의 밀월은 계속되었지만 그들의 몸짓 자체가 그들에게는 피안에서 얻는 최고의 쾌락을 추구할지 모르나 그 몸짓으로 도달한 불륜의 진행에서 얻은 쾌락공간은 현금의 도적적 자괴감으로 무너져 내린다.
영빈의 아이를 잉태하고자 염원했던 현금은 뱃속의 생명을 여러 차례 죽여가면서까지 아들을 얻어 당당한 아내의 지위를 확보하고자 하는 영빈의 아내 수경을 알고 나서 영빈을 가정으로 돌려보낸다.
현금을 잊지 못하고 현금의 일터를 찾아간 영빈은 초라하게 밀려난다. 소설 말미에 우울한 영화음악 '파리 텍사스'를 배경으로 술 취한 영빈과 현금이 주고받는 대사들을 반추해본다.
\"텍사스에도 파리가 있냐?\" \"없지. 사람들은 다들 이 세상에 없는 데를 가고 싶어해.\" \"그럼 느네 집도 거기 있겠구나. 그리로 날 보내 줘.\" \"취했어, 가봐. 차 태워 줄게.\"
현금이 떠미는 대로 택시 안으로 구겨 넣어진 영빈은 기사에게 또박또박 한 자도 안 틀리게 그의 아파트 주소를 일러주는 현금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들으며 아들을 낳아 자만심으로 가득찬 부인 수경에게 돌아간다.
이 세상에 없는 곳을 찾기 이전에 현실에서 분명하게 머물러야 할 곳으로, 현금은 한때 가감 없는 솔직한 사랑을 느꼈던 남자를 그렇게 돌려보냈다. 사랑에 속고, 시대에 속고, 이상에 속아온 반복되는 인류의 삶을 작가는 이 속임과 거짓말들을 모두 '농담'으로 환치시켜버리려 한다.
소설의 주인공인 영빈의 성격은 너무도 어정쩡하다. 성공한 의사이고 그만큼 도덕적, 양심적이라면 상당히 꼿꼿할 법도 한데, 할 말을 제때 하지 못하고 안 할 말도 가끔 해서 누이동생을 난처하게 한다든지 자기 자신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직업과 사회적 위상에 걸맞지 않게 너무 소시민적 성격을 갖고 있어 어울리지 않았다. 결국 그는 아무런 해결을 본 게 없이 무력하기 그지없는 타입이다.
소설의 뒤편에 마치 다른 이야기라도 되는 듯이 붙여놓은 치킨집 사장 치킨 박의 자살 사건은 이 길고 장황한 앞의 이야기보다 훨씬 더 읽는 이의 마음을 잡아끈다. 남은 아내와 자식들을 위해, 고칠 수 있는 병인데도 불구하고, 자기 병을 고치다 재산 다 말아먹을 것을 우려해 결국은 자살하고 마는 한 가장의 이야기다.
남편을 너무나 잘 아는 아내는 영빈에게 남편의 병을 숨겨달라 간청했지만, 환자의 병을 숨기는 것을 무지 싫어하는 의사 영빈은 치킨 박에게 병명을 말해주고, 치킨 박은 자살하는 것이다. 그가 자살하려는 순간, 다른 사람들에게 발각되어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하고 순조롭게 수술도 마치고, 다시 가족과 함께 어렵지만 따뜻하게 살아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면 더없이 행복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죽는다. 사랑이 가득 넘치는 순박한 편지만을 남기고 말이다.
소설을 읽으며, 여기 나오는 사람들의 종류만큼, 아니 더 다양한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천민적 속성의 재벌보다는, 끝까지 내 마음에 안 드는 영빈 같은 사람보다는, 치킨 박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가족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 소설 속에서 가장 인간적이고 솔직하고 자유로운 인물은 여기서 둘이다. 성공한 의사 영빈의 늦바람 상대 현금과, 맏이의 책임을 때려치우고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작품의 마무리와 그런 대로 만족스러운 결말을 내기 위해 귀국한 큰아들 영준이다. 현금은 이기적이고 기억력이 나쁘지만, 인간적이고 솔직하다. 타산적인 남편과의 관계를 일거에 청산하고 쉽지 않은 일이지만 영빈과의 관계를 단번에 끝내버린 용기와 과단성, 자신에 대한 밉지 않은 자신감에 매력을 느낀다. 영준 또한 이기적이지만, 어차피 인간은 이기적이고 어느 정도는 그래야 세상을 살아가며 속병이 안 생기는 법이니까 드러낼 필요는 있다고 본다.
박완서님의 소설은 언제나 현실감과 생동감이 넘친다. \"아주 오래된 농담\"을 읽고 나와는 다른 삶을 살아가는 등장인물들의 성격을 통하여 나의 성격도 비추어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