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독서감상문】
치숙(痴叔) -1938 채만식
아이러니란 말이 있다. 문학적으로 아이러니는 어떤 것이 우리가 예상했던 결과는 반대의 것을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읽은 '치숙' 에서는 이러한 아이러니가 강하게 엿보였는데 표면상으로는 '나'라는 인물로 '아저씨'라는 인물을 비판했지만 작가가 궁극적으로 비판하고자 했던 것은 아저씨뿐만이 아니라 '나'라는 우둔한 인간이었다.
'나'라는 아이(청년?)는 참으로 딱하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인물이었다. 일제에 의한 식민지 상황을 전적으로 긍정하고, 아무런 거리낌없이 일본인으로 동화되어 살겠다고 생각하는 그의 모습에서 일제의 우민화정책에 꼬여 국가정체성도 없고, 애국심도 상실한 우둔한 국적불명의 인간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나'의 독백 같은 중얼거림을 계속해서 읽어 내려가다 보니 역시나 '나'라는 인간은 우민화정책의 성공의 표본이 될만한 인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일본 식민정치에서 시키는 모든 것들을 좋고 유익하니깐 나라에서 장려하는 게 아니냐 며 장황하게 주절대는 꼴이 흡사 돈에 눈이 멀어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인간들의 덜떨어진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는 작품 초반부터 혼자 지껄여대는 '나'라는 인물이 아저씨라는 인물을 얼마나 같잖게 보는지를 알 수 있었다. \"어디루 대나 그 양반은 죽는 게 두루 좋은 일인데 죽지도 아니해요.\"라는 그의 대사에서 중심사건으로 '나'라는 인물과 그가 말하는 아저씨라는 양반의 대립이 있을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나'는 아저씨를 경제적으로 궁핍하다는 이유로 무시하는 어투로 말을 이어간다. 나는 이런 그의 모습에서 '나'의 사상과 아저씨의 사상이 대립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저씨란 인물은 대학까지 나온 지식인이자 사회주의자다. 나쁘게 말하면 경제적으로는 무능한 주제에 머리만 꽉 찬 채 이상을 실현시키지 못하는 당시 지식인의 전형적 인물이다. 그런데도 경제적 능력도 아저씨보다 뛰어나고, 주어진 삶에 순응하며 편안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나'가 아니라... 어리석게도 냉혹한 현실에 깊은 상처를 내민 채 부딪히려 드는 멍청한 아저씨에게서 연민의 감정이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내가 대한 민국의 국민이기 때문일 것이다.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가기 보다 불의에 항거하며, 맞서 이겨내려는 우리 나라 고유의 뜨거운 피가 팔딱거리는 한국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솔직히 본 소설을 끝까지 읽었을 때까지도 제목인 '치숙'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소설을 다 읽고 난 후에 국어사전을 찾아봤지만 치숙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고, 궁금증을 못이긴 나는 인터넷상을 뒤지다 보니 치숙의 뜻이 -멍청한 아저씨라는 것을 알게 됐고, 너무나 적절한 제목임에 하고 웃게 됐다. 멍청한 아저씨... 나는 갑작스레 언젠가 읽어봤던 소설의 맨 첫머리가 생각났다. '우리 아버지는 멍텅구리입니다...' 하지만 그 소설의 멍텅구리 아버지는 자식이라는 대상을 위해 자신이라는 존재를 희생한 인물이었다. 불현듯 나는 '치숙'의 멍청한 아저씨에게서 '멍텅구리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다. 치숙은 슬픈 존재이다. 그리고 아픈 존재이다.
여담이지만 '나'가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는 가게의 주인인 일본인 구라다상의 이름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깐 요즘 유행하는 말인 구라는 거짓말, 거짓을 뜻한다는 게 생각났다. 그것을 토대로 내 마음대로 추리를 해 본 결과 혹시나 일본의 식민지 당시 우리 나라 사람들을 우둔하게 만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거짓말을 해댄 것을 나타내기 위해 구라다(거짓말이다)라는 것을 일본인의 이름으로 설정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