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꽃 향기~~~~~~*^^*
가을이 내 곁을 빠른 걸음으로 떠나고 있다.
샛노란 은행잎과 한없이 예쁜 자태를 뽐내던 단풍잎이 낙엽으로 거리를 뒤덮고 있다.
소국과 대국이 서로 국화꽃향기 경쟁을 하는 어느 날 가을 정취에 어울리는 김하인 님의『국화꽃 향기』를 접하게 되었다.
책표지에 쓰인 다음과 같은 글이 나로 하여금 이 책을 선택하게 한 것이다.
***** 이 글은 내내 새벽이 올 때까지 쓴 것들입니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얼마나 두려운 것 인지요? 하지만 사랑 없이 산다는 것 또한 얼마나 두려운 것 인지요? 하늘과 땅 사이에 우두커니 서서 오리온 성좌에서 보내오는 전언을 매일 밤마다 기록했습니다.*****
『국화꽃 향기』를 읽으면서 베란다에 놓인 하얀 대국의 향기를 일부러 맡아보았다.
그랬다. 승우가 미주의 머리카락에서 나는 국화꽃 향기에 도취되어 10년의 세월을 가슴에 간직한 채 미주만을 그리워했던 그 마음을 알듯했다.
이 책의 주인공 승우와 미주는 대학시절 대학생 연합 서클인 CDS의 모임에서 만나게 된다.
승우는 새내기이고 미주는 승우보다 3살 연상의 CDS 회장이었다. 지하철에서 우연히 머리카락에서 국화꽃 향기를 풍기는 미주를 발견하게 되고 이 후 같은 서클 활동을 하면서 승우와 미주는 서로를 알게 되었으나, 미주는 단순한 서클 후배로만 생각하는데 반하여 승우는 미주를 연인으로 가슴에 각인하여 두었다.
여름 방학을 맞이하여 서클에서 강릉으로 단편영화를 촬영하러 갔다. 회장 미주는 총감독으로 힘들게 동분서주할 때 승우는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안고 미주를 도와서 영화 촬영은 성과를 거두었다.
서울로 돌아오기 전 날 미주와 승우는 술에 취하고 별이 내리는 동해바다의 백사장 언저리에 곧은 절개를 기리며 우뚝 솟은 해송(海松) 아래서 승우는 난생 처음으로 미주와 뜨거운 키스를 하게된다.
첫 키스는 승우가 미주의 아름다움과 그 동안 간직해온 그리움으로 인하여 숙소로 돌아가는 미주를 강제로 하였던 것이지만 승우의 가슴은 그로부터 내내 뜨거운 불이 타오르기 시작하였다.
미주는 대학을 졸업하고 영화업계에서 활동을 하였으나 많은 어려움으로 10여년의 세월을 힘겹게 홀로 생활하였다. 승우는 대학을 마치고 FM라디오 프로듀서를 방송국에 입사하여 메인프로라고 할 수 있는 <한 밤의 팝 세계>를 맡았다.
미주는 어느 날 우연히 24시 편의점에서 <한 밤의 팝세계> PD가 김승우로 바뀌었다는 진행자의 음성과 함께 김승우 PD의 취임 기념선곡으로 나오는 노래가 대학시절 동해바다에서 승우의 팔베개를 하고 밤하늘에서 내리는 별을 바라보며 승우가 불러주었던 헬렌 레디의 (You 're my world) 였다.
어느날 승우는 영화계 진출의 어려움과 나이 30에 느끼는 외로움 속에서 흔들리는 미주를 발견하게 된다. 두 사람은 술에 취하고 만취된 미주 곁에는 승우가 있었다. 미주는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는 부드러운 손길의 승우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동생 같은 남자를 사랑할 수 있겠는가? 승우라는 후배를 어는 후배보다 좋아하지만 승우라는 남자를 사랑하기를 주저하고 뒷걸음치는 이유는 정말 무엇일까? 결코 사랑에 두려워한 적은 없었지만 어쩌면 승우 같은 아름다운 남자를 가질 수 있다는 것 자체를 무서워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미주는 대학시절 서클의 씩씩한 여자가 아니라 그 순간은 소녀가 되어 꿈속에서 울고 있었다. 수그린 미주의 머리 위로 낙엽이 지고 바람이 불고 노을이 진다.
승우에 대한 미주의 고뇌와는 달리 승우는 미주 곁으로 더 가까이 접어들고 있었지만 미주의 완강한 거절로 인하여 승우는 미주를 만나지 못한다.
승우는 미주와의 추억을 사연으로 FM 방송을 통하여 흘려보냈고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일들 속에서 외로움을 느끼던 미주는 방송에 빠져든다.
국화꽃 향기가 나는 사람이여! 나는 매일 온전히 당신의 그리움만 가지고 살아갑니다..... 나는 당신을 은혜하고 고와하며 사랑하고 또 사랑합니다. 쉼 없는 눈물이 흐릅니다. 내 마음을 받아 주십시오. 나와 결혼해 주십시오.....
사연을 들은 미주는 부르르 떨며 승우가 자신의 반쪽임을 인식하게 되며 승우와의 첫 키스를 가졌던 강릉으로 떠난다. 그곳에서 승우에게 방송 사연을 띄운다. 사연의 주인공이 미주임을 알고 또한 자신을 남자로 받아들였다는 글도 확인하고 미주가 기다리고 있는 강릉으로 떠난다.
첫 키스가 있었던 동해의 백사장에는 해송아래 미주가 승우를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이렇게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게되고 그로부터 124일 되는 날 두 사람은 결혼하게된다. 승우의 부모는 3살 연상에 30살이 넘은 여자를 며느리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결혼식장에도 나오지 않는다.
승우의 부모는 필리핀 주재 외교관을 역임한 아버지 동료의 딸인 은영이라는 여자와 결혼하기를 바랬고 승우도 은영이를 좋은 여자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은영이가 승우를 배우자감으로 지목하는 반면에 승우는 동생으로 생각하였다. 그것은 미주가 은영이보다 먼저 가슴에 각인되었기 때문이었다.
결혼 후 두 사람은 행복한 생활이 시작되었다. 결혼 4년만에 미주는 승우가 기다리는 임신을 하게된다. 그러나 미주는 임신의 행복감을 느끼기 전에 위암 말기라는 사실을 산부인과 의사로 있는 친구 정란에게서 듣는다. 미주는 너무도 억울했다. 치료를 위하여 임신을 포기하라는 친구의 권유를 뿌리치며 미주는 아기를 낳기로 결심한다.
임신했다는 사실을 안 승우는 기뻐하지만 승우가 기뻐하면 할수록 미주의 가슴은 미여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미주는 통증을 느끼게되고 죽음에 대하여 생각한다. 그러나 자신의 삶의 연장을 위하여 결코 아기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이 대목에서 나는 슬픈 사슴의 눈으로 가을 밤 하늘을 바라보았다. 미주가 죽으면 먼저 찾아가서 승우와 앞으로 태어날 자신의 흔적인 아기 주미를 위하여 예쁜 집을 만들어 놓겠다던 오리온 별자리를 찾았다.
나는 네 개의 별이 사각형을 이루고 그 안에 세 개의 별이 대각선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오리온 별자리를 찾았다. 한 참을 바라보며 미주가 기사회생하기를 바랬다. 비록 소설이긴 하지만 너무나 가슴아픈 대목이어서 책을 읽다말고 밤하늘을 바라본 것이다.
가을 밤하늘은 반짝이는 별들의 강이었다. 아주 천천히 흐르는 별강으로 작은 배를 타고 오리온 별자리로 가보고 싶었다. 베란다는 아직도 미주의 머리에서 나는 국화꽃 향기가 그윽한데 미주는 점점 야위어 간다.
미주는 깊은 잠에 취한 자신의 남편 승우를 바라보며 글을 적어서 승가가 맡고 있는 방송에 보내지고 방송을 탄다.
어젯밤 나는 홀로 일어나 당신의 잠든 모습을 새벽이 올 때까지 지켜보았습니다. 나는 당신을 만질 수 있다는 것에 행복해서 울다가 웃다가 울었습니다. 너무나 사랑하는 당신을 내가 오랫동안 힘들게 했다는 아픔과 후회도 함께 만졌습니다. 나는 당신의 머리카락에서부터 발끝까지 조심스레 천 번의 입술을 맞추었습니다. 내가 떠나더라도 당신의 온몸은 내 입술의 꽃으로 무성하길 바라며........ 당신을 난 어떻게 떠나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이만 접어야겠습니다. 당신이 모로 돌아눕는 건 깨어날 시간이 그리 멀지 않았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암으로 죽어가면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연을 띄우는 사람이 미주라는 사실을 모르고 방송관계자들과 안쓰러워하던 승우는 어느 날 정란에게서 미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에 젖어든다.
승우는 미주를 데리고 선배가 잠시 비워 둔 강원도 어느 산골의 상운폐교로 떠난다.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었고 선배가 사용하던 도자기 가마도 있었다. 여기 저기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맑은 공기에 호흡하며 미주와 승우는 몇 개월을 그곳에서 지낸다.
앞으로 낳게될 자신의 딸 이름을 미주는 자기 이름을 거꾸로 하여 주미라고 지었다. 그리고 운동장 저편에 서있는 은행나무에는 승우와 미주와 딸 주미의 이름을 조각하였고 손수 만든 커피 잔 세 개의 밑에는 승우와 주미 그리고 친구 정란의 이름을 각인하여 가마에 넣었다. 이것은 미주가 죽은 후에 승우가 이곳에 와서 확인하게 된다.
천년을 사는 은행나무에는 미주가 사랑하는 승우와 딸 주미의 이름을 각인하여 삶에 대한 절규가 담겼지만 커피 잔에 각인된 정란의 이름에서는 미주가 죽은 후 아름다운 정을 가진 승우와 자신의 딸 주미를 지켜 줄 사람은 대학시절부터 은근히 승우를 좋아하던 정란이 적임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대목에서도 깊은 한 숨을 내쉬었다.
생각해보자! 행복은 잠시이고 죽음의 고통은 지속되는 과정에서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별에 대한 인고를... 정말 가슴이 아플 정도로 슬픔이 터져 나왔다.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가슴이 시려오는 것은 미주가 죽음에 임박했다는 느낌이 나의 가슴을 압박했기 때문이었다. 미주가 죽음에 이르는 시간을 아주 멀리 아니면 기사회생하기를 바래는 심정으로 이쯤해서 책장을 덮고 싶었다.
결국 미주는 죽음에 임박해서 그토록 바라던 자신의 분신인 딸 주미를 낳고 죽는다. 죽기전 승우는 미주가 자신의 생명과 바꾼 딸 주미를 안아서 죽어 가는 미주의 얼굴에 바짝 붙여준다. 말은 할 수 없으나 미주는 자신의 딸 주미를 알아보고 눈물을 흘린다.
내가 하늘 나라에 가서 오리온자리에 집을 짓고 기다릴게, 지상에서는 승우씨는 주미와 친구 정란이랑 오래오래 살다가 내가 지은 오리온자리로 찾아와! 라고 미주는 눈으로 승우와 정란에게 말하고 꺼멓게 타 들어간 갈라진 입술로 꽃결같이 부드러운 자신이 금방 낳은 딸 주미의 볼에 닿았다. 한 줄기 환희의 눈물을 유성처럼 빰에 그으며 주미의 두 눈에 눈빛을 맞추었다. 그리고 곧 고요한 수면을 이루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남들처럼 오랫동안 살지 못하고 짧은 삶을 살면서도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음과 포근히 감싸서 안아주는 정이 있는 남자 승우를 위하여 살다간 미주를 그리워한다.
오늘밤에도 겨울로 가는 마차를 타고 별이 강을 이룬 밤하늘을 배회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짧은 생을 마감한 미주가 머물며 승우와 주미를 바라보고 있을 오리온자리를 찾아가기 위함이다.
김하인 님의 『국화꽃 향기』를 읽고 나의 베란다에서 시들어 가는 국화꽃잎을 하나씩 때어내 본다. 마치 미주를 죽음으로 몰고 간 암덩이를 하나씩 제거하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참으로 슬프다. 슬픈 운명의 주인공 미주를 위하여 오늘밤에도 기도하련다.
지상에 남겨둔 사람들을 위하여 더 맑고 밝은 별이 되어 우리네들의 가슴을 밝혀주고 오리온자리에서 그토록 바래던 승우와 주미를 꼭 만날 수 있도록 말이다.
***
정말 슬프고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더군요...
전 국화꽃 향기가 물신 피어나는 2000년 가을에 밤새워가며 읽었답니다.
당신의 가슴까지 적셔줄 국화꽃 향기를 연상하면서 이 책을 읽어보시고 맑은 밤하늘을 올려다 보십시요.
그리고 오리온 자리를 찾아보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