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과학백과사전 물고기 편에 나오는 『가시고기』는 아주 작은 물고기이다. 암컷은 알을 낳은 후 알들이야 어찌되든 상관없다는 듯이 어디론가 달아나 버리면 수컷이 혼자 남아서 알들을 돌본다. 알들을 먹으려 달려드는 다른 물고기들과 목숨을 걸고 싸우며 먹지도 자지도 않고 열심히 알들을 보호한다. 알에서 깨어나 무럭무럭 자라난 아기 가시고기들이 아빠 가시고기를 버리고 제 갈 길로 떠나가면 홀로 남은 아빠 가시고기는 돌 틈에 머리를 처박고 죽어버린다.
가시고기는 이 책의 내용과 너무도 흡사하다. 백혈병으로 죽어 가는 어린 아들의 생명을 구하려고 혼신의 노력을 경주하며 끝내는 자신의 몸을 던져서 자식을 살려내고 쓸쓸히 생을 마감하는 소설 속의 주인공 정호연은 바로 가시고기였으며 이 시대 모든 아버지들의 표상이 되리라 생각된다.
조창인님은 자신의 소설 가시고기를 통하여 과거와 현재를 통틀어 불행한 삶을 살아야 했던 주인공 정호연을 내세워 몰인정하고 부도덕한 부인 하애리의 편협된 사고와 이기적인 태도를 들추어냄으로서 허영과 비이성적인 삶을 동경하는 일부 여성들에게 자성을 촉구하고 금전만능주의에 젖은 우리 사회의 단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독자로 하여금 가정의 행복은 사랑으로 결속된 부부관계와 자식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이라고 교훈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한 많은 생을 살다간 정호연은 강원도의 탄광촌에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막장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은 후 어렵게 생계를 꾸려가던 어머니가 가출한다. 아버지는 막연해진 생계를 위하여 광산관리사무소에 가서 흉기를 들고 생계보상을 요구하다가 철창신세를 지게되고 어린 정호연은 친척집을 전전한다.
출소한 아버지는 생계가 막연함을 느끼고 목발에 다리를 절룩거리며 아들 정호연을 데리고 허름한 여인숙으로 들어간다. 삶에 회의를 느낀 호연의 아버지는 자살을 하려고 준비한 쥐약을 아들과 나누어 들었다. "아버지 이 약은 잠자는 약이 아니고 쥐약이잖아요. 나는 죽기 싫어요" 라고 말하는 아들을 보며 눈시울 적셨던 아버지는 호연을 데리고 파출소 앞에 남겨둔 채로 어디론가 떠나갔다. 그것은 혼자만의 자살을 의미하였다.
"저 녀석은 양아치밖에 안될 거야" 라는 원장의 조소를 들으며 호연은 고아원을 거치고 야간고등학교와 대학을 마치게 된다. 각별히 문학에 재능이 있던 그는 시를 잘 지었다. 해병대를 제대하고 대학 4학년에 복학한 어느 날 문학 동호인 중 누군가에 의해서 그의 시는 회화과에 재학중인 여대생이 그린 삽화와 함께 대학신문에서 주최하는 문학상에 투고되었다.
삽화를 그려준 여대생은 아버지가 전직 도지사 출신인 명문가문의 외동딸이었다. 두 사람의 사이는 날로 가까워지고 여자의 집에서 반대하였지만 지독히 쓸쓸한 결혼식을 올렸다. 신혼여행지에서 친정과의 결별을 선언한 호연의 아내 하애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법을 알지 못했으며, 월간 문예지 편집부에 근무하는 정호연의 알량한 월급으로 한달을 견뎌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돈이나 걱정하면서 구질구질하게 살게 될 줄은 몰랐어요" 라고 불만을 털어놓는 아내 때문에 호연은 여성지 기자로 자리를 옮겼고 틈틈이 외부원고를 쓰거나 번역으로 생활비를 벌어서 처의 불만을 줄이려 하였다. 호연은 시상을 떠올릴 시간도 없이 바쁘게 살았다. 이렇게 열심히 산 덕분에 그는 큰 아파트도 장만하고 그사이 아들 다움이를 얻게 되었다.
불행했던 어린 시절을 겪었던 호연은 행복을 맛보며 알찬 삶을 살아갔다. 아이가 세돌이 지나고 호연의 아내는 대학원에 입학하였고 그로 하여 호연은 아이돌보기와 가정생활 꾸리기와 직장생활 등 3가지의 일을 하게 되었다. 결혼 후 6년의 세월이 지나던 어느 날 남자가 생겼다며 이혼을 요구하는 아내는 결국 아이를 남겨두고 친정으로 혼자 들어가면서 별거를 하게 되었다.
프랑스로 대학원의 은사인 박인석과 함께 떠났던 아내는 곧 아이의 양육포기각서와 이혼서류를 보내왔고 호연은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그들의 결혼은 그렇게 끝났지만 호연에게는 억제하지 못하는 울분과 엄마 잃고 백혈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는 어린 아들의 슬픈 눈망울이 남겨졌다. 호연은 생각했다.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다른 사내의 품속으로 떠나버린 아내의 모습은 어렸을 적에 한쪽다리를 잃은 아버지와 어린 아들을 남겨놓고 어디론가 떠나버린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한없이 그리웠고 한없이 야속했던 그 어머니가 바로 자신의 아들 다움이의 어머니가 아닌가? 다움이도 그랬을 것이다. 엄마보다 아빠가 더 좋다고 말하던 아들의 눈망울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적시던 정호연 그는 왜 그렇게 나약해 보였을까?
나는 생각해본다. 정호연 그는 바로 알을 낳고 어디론가 떠나버린 어미 가시고기 대신 극진히 알을 보호하는 아빠 가시고기였다.
백혈병으로 머리카락이 다 빠져버린 다움이의 머리를 쳐다보면 볼수록 가슴이 미여지는 슬픔이 눈시울을 적시게 하는 날들이 계속되면서 호연의 생활은 더욱 피폐해졌다. 병원비를 마련하느라 어렵게 마련했던 아파트를 팔고 전세로 전세에서 500만원의 보증금에 월 30만원의 반 지하 달 셋방으로 이사를 해야했다.
다움이는 다시 백혈병이 재발하여 다시 입원하게 되었고 매일 항암 치료의 고통으로 힘들어하며 나날이 야위어 가는 아들의 희망 없는 삶을 지켜보는 호연은 차라리 자신에게 죽음의 병이 내리고 아들이 새 생명을 찾기를 간절히 기원하였다. 꺼져 가는 어린 생명에게 곧 낳게될 거라고 거짓으로 희망을 안겨주지만 10살 박이 다움이는 옆 병상에서 귀찮게 굴었던 백혈병 어린이 성호가 끝내 죽었음을 성호 어머니가 자신을 껴안으며 흘렸던 눈물에서 알았다.
백혈병 환자의 병실 유리창 너머로 벤치에 앉은 아버지가 연신 피워대는 담배연기가 보였다. 다움이는 걱정이 되었다. 이럴 때 누군가 아버지를 도와줄 사람이 있다면 하는 바램과 함께 떠나버린 어머니를 생각하였다. 보고싶었지만 야속하였다. 피어나는 담배연기는 아버지를 더욱 애처롭게 하였다. 호연은 아들이 담배 피우는 것을 싫어하였기 때문에 끊었지만 소생 불가능한 아들이 죽을 때까지 고통스러워하는 항암 치료에 매달리게 하는 것과 그간 밀린 병원비를 납부하지 않으면 치료를 중단할 수밖에 없다는 원무과 송계장의 병원비 독촉등으로 인한 고뇌의 시간이 엄습해왔기 때문에 연거푸 담배를 피우고 있었던 것이다.
골수이식만이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교과서적으로 말하는 주치의 민과장의 안경너머로 호연의 깊은 슬픔이 연민의 정으로 솟아나는 듯 서로는 한 동안의 침묵이 흘렀고 호연은 아들을 완치되지도 못하는 항암 치료에 의존하다가 죽어가게 할 수는 없다고 외치며 퇴원을 요구한다.
밀린 3개월의 달세를 공제하고 남은 달세 보증금으로 병원비를 치르고 50만원에 산 봉고차에 몇 가지 짐을 챙겨 옮긴다. 이혼 전에 아내가 입었던 옷 몇 벌도 박스에 담았다. 행여 아내를 만나면 전해주려는 호연은 참으로 착한 남자였다. 훗날 아내를 만나서 옷을 전달하려다 망신을 당한다. 그렇다 유행이 지나버린 옷을 입을 아내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아내가 돌아올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아내의 옷가지를 챙겼던 것이다. 아들의 옷가지를 챙겼다. 지난해 사서 한번밖에 입지 안았던 겨울잠바를 만지며 아들이 첫눈이 내릴 때까지 살아주기를 바랬다.
봉고차 생활을 했지만 아들은 완쾌되어 퇴원한 것으로 생각하고 아빠와 함께 있다는 점에서 아픔보다도 무한한 행복감에 빠졌다. 학급 여자친구에게 선물하려고 아버지에게 부탁해서 산 구슬 박힌 예쁜 머리핀을 만지작거리며 여자친구를 만나려고 했으나 만나지 못하고 동해안으로 떠난다. 한여름 낡은 봉고차안에서 카레를 끓여주던 아빠를 보며 남들이 거지취급을 하는데도 마냥 즐거워하는 아들을 보면 볼수록 가슴이 미여져왔다.
어느 산골의 피 노인을 만나고 노인의 말에 감화되어 약초와 뱀을 다려서 아들에게 먹였다. 총 42권이라는 만화책 드래곤볼을 사서 하루 1권씩만 읽도록 했던 것은 아들이 42일 만이라도 자연 속에서 살다가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생각했던 호연은 사락골 생활에서 아들이 즐거워하고 나날이 건강을 되찾는 듯 살이 찌고 원기도 회복하여 피 노인의 말처럼 완치되는 기분이 들었다.
아들과 함께 폐교에 내려와서는 철봉도하고 교실에서 호연은 선생님이 되고 아들은 학생이 되어 수학문제를 풀기도하는 행복한 시간이 있었다. 아들은 교실 벽에다 정다움이라는 자기의 이름을 적었다. 훗날 호연은 간암으로 죽어가기 직전에 이곳에 와서 아들이 적어둔 이름을 확인하며 아들에 대한 그리움에 눈물을 흘린다.
행복했던 사락골 생활도 어느 날 고열과 함께 혼수상태로 빠져든 아들로 인하여 끝나고 지긋지긋했던 병원생활을 다시 하게 되었다. 잡지사 후배인 여진희를 통하여 아내를 만나게 되었고 아내는 항상 20년 내외의 연상이며 대학원 은사라는 남편 박인석을 대동하고 있었다. 아들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느냐고 쏘아 부치며 이제부터 자기가 아들을 돌보겠다고 했다. 일본 여성으로부터 골수를 제공받기로 되었고 이식비용이 4천여 만원이나 들기 때문에 거지와 다를 바 없는 호연에게 더 이상은 아들을 맡길 수 없다고 하였다.
아내의 행동은 이기적이었다. 병실로 면회를 함께 온 박인석은 아들이 사락골 생활에서 조각한 목각인형을 발견했고 아들의 조각 솜씨에 경탄하여 아내에게 아들을 자기들이 맡아서 천재적인 조각가로 만들고자했던 야심에서 아들을 호연에게서 빼앗아가려는 속셈이었다. 호연은 아내 없이는 살아도 아들 없이는 단 하루도 살지 못하는 사람이었고 언제는 양육포기각서를 보내고 이제는 아들마저 내놓으라는 아내가 한없이 야속하기만 하였다. 생활비 마져도 절박한 그는 자기가 골수 이식비를 충분히 마련할 수 있노라고 말했다. 그것은 마지막 남은 자존심의 대결이었다.
그러나 4천여 만원은 적은 돈이 아니었다. 친구들은 찾았지만 모두들 딴전을 피워댔고 대학 동창 이국성의 권유로 호연의 자존심으로는 쓸 수 없는 소녀들의 취향에 맞는 시집을 내어 받기로 했던 천만원은 뒤늦게 받았지만 수술비에는 턱없이 부족하였다. 골수 제공자가 있어도 수술비가 부족하여 수술하지 못하고 아들은 점점 사경으로 빠져드는 어느 날 원무과의 송계장과 대화 중 호연이 해병대 선배임을 알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선배를 돕지 않고 누구를 돕겠느냐고 하면서 권하는 말이 신장을 밀매하면 아들의 골수이식 비용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신장을 밀매한다는 것은 부도덕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아들을 살리려는 살신성인의 정신과 뜨거운 부정(父情)이 움직여 신장을 밀매하기로 결심하고 조직검사 비용을 마련하기 위하여 아들의 병실에서 열심히 원고를 찍던 노트북을 팔아야 했다. 노트북은 생활비를 벌어들이는 유일한 생계수단이자 아들과 함께 있어주는 친구였기에 정이 많이 들었었다. 호연에게는 불행의 연속이었다.
조직검사결과 그는 악성 간암환자로 판명되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울컥해지고 눈시울을 적시던 나는 이 대목에서 두 눈을 적시고 말았다. 신장을 팔아서 자식을 살리려는 아버지에게 간암선고는 너무도 가혹한 형벌이었다.
병원도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업임을 강조하는 송계장의 또 다른 제안은 자식보다 죽음을 앞둔 아버지에게 망막을 밀매하라고 권유하였고 밀매비용의 10%는 소개비로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인간들의 잔악한 면이 드러나는 대목에서는 울분을 터트렸다.
호연은 잠시라도 떨어져 있지 않으려는 아들에게 지방출장을 다녀오겠다고 하고 망막 이식수술을 하였다. 망막이 떨어져 보이지 않는 눈에 붕대를 하고 한쪽 눈으로 계단을 내려오다가 넘어지는 호연에게 나는 연민의 정을 느끼며 소리 없이 울었다. 만일 내가 그 사람이었다면 하는 생각에 나의 뜨거운 눈물은 가슴까지도 적셨다. 너무나 슬펐다.
아버지의 망막 밀매로 받은 돈은 아들의 골수 이식에 쓰였고 주치의 민과장은 수술이 잘되었다고 하였고 아들의 건강은 나날이 회복되어 건강을 되찾은 반면에 호연의 건강은 급속히 악화되었다. 몰핀을 처방하겠다는 민과장의 권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들이 겪었던 고통은 자신이 겪는 통증보다 훨씬 컸을 거라고 생각하며 참아낸다.
아내가 그의 남편 박인석과 함께 병실을 찾았고 아내는 다시 아들을 자기에게 맡길 것을 강요하였다. 호연은 생각했다. 자기가 죽은 후 고아로 자라게 할 수는 없었다. 자신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결국 아내에게 자신의 몸을 던져서 살려낸 아들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아빠와 헤어지지 않겠다고 울부짖는 아들에게 냉정함으로 일관하여 아들이 가진 아버지의 정을 없애달라던 아내의 말대로 호연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들에게 야속하리만큼 냉정하게 대했다 그리고는 못내 뒤돌아 울었다. 10살 박이 다움이도 아버지의 냉정함에 울었다. 아버지가 냉정하게 할수록 어머니가 미웠다. 프랑스로 내일 떠난다던 아내는 갑자기 오늘 저녁에 떠난다고 하였다. 호연은 암 통증보다도 더 큰 슬픔을 느꼈다.
떠나기 전에 더 냉정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 달라던 아내의 요구로 그는 어둠이 내린 저녁 병원의 벤치에서 아들이 오기를 기다린다. 저만치 그토록 보고싶었던 아들 다움이가 오고 있다. 다움아! 부르며 달려가서 앉아주고 싶었다. 복수가 차고 올라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아들에게 그 자리에 서라고 말한다. 피골이 상접한 몰골을 아들에게 보여주지 않으려고 하였다.
아들이 울면서 아버지의 귀를 만져보겠다고 했지만 그는 허락하지 않았다. 비행기 시간 늦겠다고 재촉하는 아내에게 이끌려서 떠나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끝까지 강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였던 호연은 그를 사랑한 여진희의 부축을 받고 사락골로 향한다.
폐교의 벽에 적힌 아들의 이름을 발견하고 그는 울었다. 그날 밤 첫 눈이 내렸고 그는 마지막으로 아들을 위하여 기도하면서 숨을 거두었다.
눈물로 책장을 적시고 가슴으로 읽었던 조창인 님의 가시고기는 우리 모두에게 가족의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일깨워주었다. 이 책을 전 세계의 모든 아버지들에게 권하고 싶다.
** 저의 홈페이지에 오시면 가슴으로 쓴 글(시)들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번 들려보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