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저는 일 중심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일 다음이었고, 일을 위해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일을 하면서 경험하는 성취감은 대단히 저를 기쁘게 해주었고, 주위의 인정도 저를 즐겁게 했습니다. 뿌린대로 거둔다는 말을 가장 좋아하면서, 뿌린대로 못거두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한마디로 일 우선의 삶을 살면서 사람들과의 관계는 두번째였습니다. 일은 나 자신이었고, 그런만큼, 계획한 일을 끝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안가리고 달려들었습니다. 성과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일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후에 알게 되었습니다. 일을 우선해서 사람을 둘째로 여기다가는 일도 결국 그르치게 되는 것을 많이 보게 된 것입니다.
작은 기업을 운영하시는 제가 아는 분은 참으로 훌륭한 인품으로 불우 이웃돕기를 많이 하십니다. 그 분은 자기 수입의 일부를 늘 가난한 이웃을 위해 쓰십니다. 자원 봉사를 통해 사랑의 실천을 하시는 분이기에 저는 그 분을 만날 때면 언제나 존경을 표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우연히 전혀 다른 곳에서, 고용주로부터 시달리는 종업원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그 사업체의 주인이 바로 그 훌륭한 분었습니다. 전혀 다른 상황에서 제가 만난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가 바로 그 근로자들을 힘들게 하는 악덕 고용주였던 것입니다. 조심스럽게 그 분이 곤경에 빠지지 않도록 알아보니, 그 사업체에서 1년을 일하는 사람이 드물 정도로 그 분은 근로자들을 힘들게 하고 있었습니다. 열악한 근로 환경과 경영자의 혹독한 업무 추진 방식에 견디지 못하는 종업원들이 몇달을 못견디고 그 곳을 떠난 것입니다.
그 분은 그런식으로 기업을 경영하여 얻은 수입으로 불우이웃돕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함께 일하는 종업원들은 한여름에도 에어컨없이 땀에 절어 일을 하다가 병이 들기 일쑤였습니다. 신입 사원이 생각보다 일을 빨리 배우지 못하면 심한 모욕감이 들도록 망신을 주고, 자기의 지시대로 업무를 처리했다가도 결과가 나쁘면 아랫 사람에게 책임을 물어 징계의 칼을 들었다고 합니다. 한솥밥을 먹는 그 기업의 종업원들은 아무도 그를 존경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가까운 곳의 사람들을 사랑하고 존경하지 못하는 사람이 멀리 있는 사람을 걱정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함께 있는 사람에게는 사랑을 베풀지 않으면서, 만나지도 않은 사람들은 어떻게 사랑할까요? 그것은 잘못된 사랑의 실천이었습니다. 그 분은 가까운 곳의 원성은 듣지 못하고 먼 곳에서 사랑을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가까운 곳을 살펴야 하겠습니다. 가족들로부터 존경받지 못하는 사람은 밖에서 아무리 멋있는 일을 해도 100퍼센트 신뢰하기가 어렵습니다. 자기 사업체의 부하 직원들로부터 존경받지 못하는 경영자는 밖에서 아무리 유명해도 사업 추진에 한계가 있습니다. 자기 반 학생들에게 존경받지 못하는 선생님은 아무리 좋은 참고서를 출판해도 훌륭한 스승으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담임교회 성도들의 존경을 못받는 목사가 다른 교회의 부흥 성회만 잘 인도하면 훌륭한 목회자일까요?
이제는 가까운 곳에 눈을 돌려, 일보다 사람을 먼저 챙기고, 그 사람들로부터 힘을 모아 더 좋은 결과를 내는 그런 사고 방식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늘 함께 하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 그들이 나를 항상 이해해 줄 것 같은 사람들, 내가 작은 약속을 어겨도 문제없을 것으로 짐작되는 사람들에게 더 잘 해야 하겠습니다. 가까운 곳에서 인정받지 못하면 다른 것은 모두 헛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