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잘사는 나라이기에 저를 놀라게 하는 일이 가끔 있는데, 잘산다는 것은 물자가 풍부하고 사람들의 교육 수준이 높다는 것 이상입니다. 정말 잘 산다는 것은 약자를 배려하고, 신경쓰기 힘든 부분을 섬세하게 신경씀으로써 불편을 느끼는 사람이 적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지난 여름 아들 다은이와 콘서트를 갔습니다. 이 곳 패어팩스 카운티에 있는 조지 메이슨 대학교의 체육관에서 열린 콘서트의 주인공은 힐러리 더프. 10대의 나이에 디즈니의 여러 드라마와 영화로 스타가 되어 이제는 음반까지 발매하면서 미국 어린이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는 가수였습니다. 이미 영화와 드라마로 많이 보았지만 실제로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가 무대에 나와 노래를 시작하자 다은이를 포함한 수천명의 관객들이 소리를 지르며 환호했습니다. 현란한 조명과 터질듯한 음향은 청중을 흥분하게 만들기에 족했습니다. 차분한 노래는 차분한대로, 빠른 노래는 빠른 대로 관객을 휘어잡았습니다.
그런데 공연 중, 아는 노래를 따라 부르는 다은이 옆에서 저는 체육관의 객석을 한번 둘러 보았습니다. 반대편 쪽 객석 맨 앞 줄에 어떤 사람이 검은 정장을 하고 서서 객석을 보며 열심히 지휘를 하고 있었습니다. 장내가 어두울 때도 그 사람에게는 부분 조명이 쏟아져서 몸놀림을 모두 볼 수 있었습니다. 도대체 뭘하고 있는 것인가? 저는 궁금했습니다.
박자에 맞추어 흔드는 손은 지휘자같았는데, 그 사람의 바로 앞에 펼쳐진 악보를 넘겨가며 팔을 흔드는 것이 더욱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검은 옷도 자세히 보니 단정해 보였고.
한참 후에 다시 그 곳을 볼 때도, 그는 그렇게 계속 지휘를 하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지휘자가 저기서 무얼하는가? 참으로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노래 한곡이 끝나고도 박자와 상관없이 팔을 움직이는 그를 보며 저는 그가 무엇을 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수화로 노래의 내용을 청각 장애인들에게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2시간 가까운 공연 시간 내내, 그는 열심히 노래의 가사를 수화로 통역한 것입니다.
콘서트에서 가수의 노래 순서에 따라 노래 가사가 정리된 악보를 펼치고 부분 조명의 불빛 가운데 그렇게 서서 청각 장애인들을 위해 수화 통역하는 것을 저는 처음 보았습니다. 청각 장애인이 과연 음악 콘서트를 얼마나 즐길 수 있을까요. 또 그 날의 공연에는 과연 몇명의 청각 장애인이 와서 공연을 즐겼을까요? 저는 그날 미국이 잘 사는 나라라는 것을 또 한번 실감했습니다.
이 곳은 시내 버스가 장애인을 친절히 태운 후, 모든 승객이 앉은 후에야 출발하는 나라, 지하철 역의 엘리베이터가 고장나면 그 다음 역으로 셔틀 버스를 운행해서 장애인이 지하철을 이용하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도록 하는 나라, 놀이 공원 시설마다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도록 특별 공간을 만드는 나라, 장애 친구를 놀리면 교사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어린이들을 지도함으로써 친구를 더욱 존중하게 만드는 나라, 장애 학생이 입학하면 그를 위해 특별히 통로를 개조하고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나라입니다.
언제쯤 한국도 그렇게 약자를 배려하는 나라가되어 모두가 불편없이 살 수 있을까요? 언제쯤 우리도 자신의 가진 것을 자랑하기보다는 남과 나누기 위해 힘쓰게 될까요? 어서 그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