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와서 배운 것이 여러가지 있지만, 그 중 풋볼을 보는 법을 배운 것은 전혀 생각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처음 유학와서 공부하던 앨라배마대학교가 미국 대학 풋볼에서 전국 챔피언을 열두번이나 한 역사를 가진 관계로, 자연스럽게 캠퍼스 분위기에 휩싸이며 관전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학교 아파트에 살던 당시, 주말이면 장사진을 치며 풋볼 경기를 보러 온 관객들 덕에 집 앞에 내 차를 주차 못했던 일도 많았습니다. 8만 8천명이 들어가는 학교 스태디움 앞에 살았던 우리 가족은 가을 학기 주말이면 그야말로 풋볼의 열기를 느꼈지요. 우리 학교를 방문해서 게임을 치르는 상대 학교의 응원단도 캠퍼스 내 한자리에 모여 기세를 올립니다. 저마다 자기 학교 풋볼팀의 유니폼과 같은 색의 옷을 입고 응원을 하러 오기에 스태디움은 두가지 색으로 나뉘어집니다. 당연히 홈팀을 응원하는 관중이 많지요. 밀리언 달러 밴드라고 이름 붙여진 우리 학교 마칭밴드의 연주도 신이 났습니다. 아내와 아들도 함께 가 환호하며 보던 풋볼은 시합 이외의 많은 기억을 제게 남겼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그렇게 2년을 지내던 앨라배마를 떠나 버지니아에 와서 살면서 ESPN 채널에서 중계해주는 대학 풋볼은 저를 자석처럼 TV앞으로 당겼습니다. 앨라배마대학교의 한 시즌 12게임 중 7, 8 게임 정도를 늘 중계 해주는 방송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습니다. 토요일 오후, 가족이 함께 풋볼 중계를 보며 응원을 하다가 소리도 지르니 이웃들이 아마 놀랄 겁니다.
그러다가 지난 주말에는 아예 게임을 보러 켄터키를 다녀왔습니다. 앨라배마대학교와 켄터키대학교의 게임이 켄터키대학교에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금요일 오후, 아이를 학교에서 태워서 곧바로 출발한 우리 가족은 금요일 밤을 웨스트버지니아의 서쪽 끝, ‘헌팅톤’에서 묵은 후, 토요일 낮 그 날의 게임 시작 30분 전에 ‘렉싱톤’에 있는 켄터키대학교의 스태디움에 입장했습니다. 약 500마일을 달려 간것이지요.
파란색의 켄터키대학교 유니폼 색으로 대부분의 관중석이 덮인 가운데, 앨라배마대학교 응원단도 붉은색 옷들을 입고 한쪽에 모여 있었습니다. 아내가 전날, 우리 가족 모두가 입을 앨라배마대학교 티셔츠를 챙겨왔기에 우리도 앨라배마 응원단임을 보여주면서 자리를 잡고 경기를 보았습니다. 그날 따라 밴드도 안왔지만, 적지에서 싸우는 앨라배마 선수들을 큰 소리로 응원하면서 앨라배마 응원단들은 모두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유일한 아시안 가족인 우리를 사람들은 눈여겨 보았지요, 우리는 오직 게임만을 즐겼으며, 앨라배마대학교는 그날 45-17로 켄터키대학교를 이겼습니다. 모처럼의 풋볼 경기 관전은 대만족이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10월의 단풍을 보며 웨스트버지니아와 켄터키 산간 지방을 여행하는 것도 즐거웠지만, 아무래도 풋볼 게임에서 모교가 이겼다는 사실이 가장 즐거웠습니다. 경기장에서 느끼는 감동과 쾌감은 이전과 다름없었습니다. 왜 많은 미국인들이 풋볼을 좋아하는지, 왜 어릴 적 AFKN에서는 늘 풋볼을 보여주었는지, 이제는 좀 알 것 같습니다. 프로페셔널 풋볼도 좋지만 저는 대학 풋볼이 더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