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여자친구는 채식주의자입니다.
그녀가 미소지을 때 입가에는 풀향기가 피어나고
얼굴 가까이에는 언제나 포도씨추출물 냄새가 납니다
"저기 들어갈까?"
<떡볶기, 오뎅, 순대>집에서 떡볶기를 먹기 시작했습니다
드르륵- 문이 열리며 여고생 한 명이 들어옵니다
"순대 한 접시 주세요"
아줌마는 사라센 왕자가 쓰던 반달형 긴 식칼을 꺼내 원
통형 숫돌에 두어 번 스척거린 뒤 김이 무럭무럭 나는
순대를 집어들고는 썰기 시작합니다
"다른 고기는 안 해?"
"저어 허파하고 간 약간 넣으시고요. 염통도 좀 썰어주
시고요, 그리고..."
저gr은 이 때 여자 친구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조금씩 일
그러지기 시작하는 풀뿌리민주주의자의 얼굴을.
뒤돌아보니 오늘 사육제의 주최측과 참가자는 수호전 노
지심이 "술과 고기를 내와라!" 호통칠 때의 그 번들거리
는 식욕으로 썰리는 고기를 바라보며 자칫하면 흘러나
올 듯한 침을 간신히 삼키고 있습니다.
"참 귀때기도 물렁뼈 쪽으로 약간 썰어주세요!"
남 먹는 거 자꾸 들여다보면 추접스럽다고 해도 궁금한
건 못 참아 한번 더 그들 얼굴을 돌아보고 나서 앞을 보
니 제 여자친구 파스칼리나는 떡볶기 대부분을 남긴 채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지난 여름 레지오 사람들과 개를 두 마리나 때려잡아 수
육 무쳐먹고 된장 넣어 탕 끓여먹은 저로서는 그녀에게
해줄 딱히 이렇다 할 위로의 말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