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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육제

     날짜 : 2004년 04월 02일 (금) 1:29:49 오후     조회 : 2109      
제 여자친구는 채식주의자입니다.

그녀가 미소지을 때 입가에는 풀향기가 피어나고

얼굴 가까이에는 언제나 포도씨추출물 냄새가 납니다

"저기 들어갈까?"

<떡볶기, 오뎅, 순대>집에서 떡볶기를 먹기 시작했습니다

드르륵- 문이 열리며 여고생 한 명이 들어옵니다

"순대 한 접시 주세요"

아줌마는 사라센 왕자가 쓰던 반달형 긴 식칼을 꺼내 원

통형 숫돌에 두어 번 스척거린 뒤 김이 무럭무럭 나는

순대를 집어들고는 썰기 시작합니다

"다른 고기는 안 해?"

"저어 허파하고 간 약간 넣으시고요. 염통도 좀 썰어주

시고요, 그리고..."

저gr은 이 때 여자 친구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조금씩 일

그러지기 시작하는 풀뿌리민주주의자의 얼굴을.

뒤돌아보니 오늘 사육제의 주최측과 참가자는 수호전 노

지심이 "술과 고기를 내와라!" 호통칠 때의 그 번들거리

는 식욕으로 썰리는 고기를 바라보며 자칫하면 흘러나

올 듯한 침을 간신히 삼키고 있습니다.

"참 귀때기도 물렁뼈 쪽으로 약간 썰어주세요!"

남 먹는 거 자꾸 들여다보면 추접스럽다고 해도 궁금한

건 못 참아 한번 더 그들 얼굴을 돌아보고 나서 앞을 보

니 제 여자친구 파스칼리나는 떡볶기 대부분을 남긴 채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지난 여름 레지오 사람들과 개를 두 마리나 때려잡아 수

육 무쳐먹고 된장 넣어 탕 끓여먹은 저로서는 그녀에게

해줄 딱히 이렇다 할 위로의 말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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