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이니 무언가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을 하나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며칠째 내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다. 구조를 요청하는 바
이다. 내게 필요한 건 위스키, 아스피린, 그대.
그러니까 이 셋 중에 하나만 있어도 다행이라
는 것이다. 나머지는 안전한 봄날를 위해 남겨
두어도 좋지 싶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는 건 물론 심심한 일이 틈림없지만 안녕한 일
이기는 하다. 때로는 우울증을 수반할 수도 있
지만 그리 나쁘지는 않다. 참을성이 기특해진
요즘의 나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화가 치밀어
도 문을 꽝 닫고 돌아서버리는 일 따위는 하지
않는다. 단정은 그야말로 나를 결박하는 독이
었으니까. 그렇다. 살아보니 인내와 그대는 언
제나 다 쓴 치약과도 같았다. 마지막이라고 생
각했지만 조금씩 남아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