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동 모래사장으로 시작되는 당신의 사랑이야기
바위고개로 시작되는 나의 사랑이야기
이제 그 사랑은
쓰진 않아도 버리지 않는 오래된 지갑처럼
새것에서만 나는 냄새도
새것에서만 나는 반짝임도 없어진 채
서랍 한 켠을 묵묵히 지키고 있다오.
낡는다는 것과 늙는다는 것
지날수록 부피가 많아지는
시간의 무게를 갖게 되지 않소?
인디언 말로
친구란 슬픔을 함께하는 사람이라 하더이다.
이제 당신과 나
슬픔을 함께 할 수 있는
40년 전의 사랑을 우정으로 바꾸어 부르게 된다면
그것은
진화라고 할까
퇴화라고 할까
하필이면 왜 당신같은 사람을 만났을까?
다행히 당신같은 사람을 만나서... ...
그 두 가지 푸념과 감사가 엮이고 엮여서
어느새
노해가 기다리는 강 하구에 이르렀구려
골짜기에서 시작한 두 시냇물이
어느 날 합해져 천을 이루고
수많은 지류들을 만나고
모래톱을 만나서 잠시 갈라지기도 하듯이
우리는 친하기도, 싸우기도, 그리워하기도 하면서
머지않아 초저녁 별 가득할
이 강 언덕에 서 있다오.
하지만
바다에 다 가서
다시 갈라지는 강물이 없듯이
우리의 강은 더 깊고 넓게
소리 없이 흘러갈 것이오.
누구나에게
되감기가 허락되지 않는 인생의 초행길
우리 앞에 놓여 지는 길들이
때로는 남들은 가지 않는 높은 꼭대기길이기도 하고
때로는 남들보다 훨씬 빠른 지름길이기도 하지만
함께 짚고 함께 가고 있는
그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
초행길을 덜 낯설게 한 것은 아닌지...
덜 두려워하게 한 것은 아닌지...
잃으면 안 되는 것들을 꼭 잡고
소용돌이 속의 가마소를 지나듯
결코 소풍이라고 할 수 없는 삶 칠부능선 즈음에
다만 한 가지
밖에서 겨울을 지낸 알뿌리 식물이
봄날 피워낸
꽃잎의 안간힘처럼
서리를 맞으며 피워낸
구절초의 시린 향기의 모질음처럼
죽는 날까지
온실 속으로는 결코 한 발도 집어넣지 않기를...
노해; 바닷가에 펼쳐진 벌판.
모래톱; 모래사장.
가마소; 소용돌이의 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