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 페어글라스를 거쳐서 오는 햇빛을
한 줌 한 줌 받아서
오막조막 제라늄 꽃대궁들이
황금분할 선을 그리며
아리잠직한 봉오리들을 그림처럼 들고 있다.
욕심 많은 나는 화분을 거실 쪽으로 돌려놓았다.
금방 터질 것 같던 봉오리들은
유리창 쪽으로 모가지를 돌리느라 땀을 흘리다가
시들시들 눈썹춤을 추는 듯
얼른 네 님 찾아가라고 다시 돌려놓아 주었다.
물도 주고 비료도 주고 아침마다 인사도 해 주고
지금쯤 내 목소리도 알아들을 법 하건만
해바라기만 하는 녀석들은
내게는 뒤통수만 보여준다.
엄마가 기다리는 곳
비행기를 열 세 시간이나 타고 가야하는 미국.
아빠 손을 꼭 잡고
뒤도 안 돌아보고 출국장으로 들어가는 짱이.
빕더서서 떠나는 연인처럼...
내게는
학교에서 배우던 교과서, 크레파스, 장난감, 작아진 옷과
내 손안에 쏙 들어오던 작은 손 온기만 남기고.
그래 그런거야.
가슴에 이는 바람이 꽃이 되는 11월
나의 짝사랑은 계속되리니.
아리잠직하다; 모습이 얌전하며 어린 티가 있다.
눈썹춤; 마음에 들지 않아 눈가를 움직임.
빕더서다; 약속을 어기고 돌아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