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갈나무 숲 속에 졸졸졸 흐르는 샘물이길래
아무도 모르라고 도로 덮고 내려오지요.‘
파인 김동환님의 시 가곡처럼
내게도 혼자만 살짝 꺼내보는 아끼는 말이 있습니다.
산스크리트어 ‘바르시카’, 번역하면 雨期(우기)라는 말입니다.
지금은 스님들의 안거나 천주교 신자들의 피정이라는 말의 근원이 되겠죠.
비가 와서 사냥을 하지 못할 때
자신을 돌아보는 생각의 시간을 갖게 됨으로써
자의식이 성장하는 힘든 시기라고 합니다.
손가락만 스치면 금세 금세 바뀌는
스마트폰의 화면처럼 허둥대며
또 반년이 지났습니다.
화학원소의 결합모양으로 누군가와 붙어서...
길미가 되기도, 안 되기도 하는
핑계도 갖가지 모임,
혼자서도 잘 떠들어주는 친구 텔레비전.
떨어지면 불안한 친구 휴대폰.
싱크대에 쌓여있는 뒤죽박죽 설거지거리마냥
체계를 잃어버린 생각의 고삐들
길거리 사람들을 위해 새 옷을 갈아입는
쇼윈도우에 서 있는 꼭두사람과 다르지 않은.
장마전선 운운하는 일기예보가 반갑습니다.
비오는 날엔
사냥을 쉬고 동굴에 앉아서
골똘한 생각에 잠겼던 그 옛날의 사람들처럼
우리도 작은 동굴 하나씩 찾아서
반가부좌를 틀고 앉아
힘들고 힘든 바르시카의 시간을 가져 보면 어떨지요.
★ 길미;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보탬이 되는 것.
★ 꼭두사람; 주로 옷을 파는 곳에서 쓰는 사람 모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