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변태’하듯이 너를 만난 뒤 나는 서서히 ‘변태’되어 갔다.
사실 ‘진화’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기도 하지만, 내 생에 완료가 되는 일이니 ‘변태’라는 표현을 쓰기로 했다.
네가 좋아한다는 것은 곧 내가 좋아하는 것이 되었으며
네가 멋있다는 사람, 설렌다는 행동들은 머리 속에 기가 막히게 쏙쏙 들어와 앉아
나도 모르는 사이 나를 변화 시켜나갔다.
‘변태’라는 용어의 사전적 의미가 ‘동물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큰 형태변화를 거쳐 성체가 되는 현상’을 뜻하는 것이니
나는 완벽하게 ‘변태’ 그 자체가 확실했다.
옷 입는 스타일부터 몸의 외형, 체중, 웃는 표정, 생활 양식까지 죄다 바꾸었다.
어깨는 넓어졌고, 허리는 펴졌고, 걸음걸이는 11자가 되었다.
말투는 덜 공격적이고 차분하게, 앞서 나간 뒤 문은 잡아 줄 수 있게
연락은 자주 (솔직히 이건 잘 안되긴 했지만), 술은 취하지 않게
모든 것이 변하고 있었다. 예전의 나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많이
나를 조각조각 분해하여 필요 없는 것은 과감히 버리고
네가 좋아하는 것들로 하나 하나 재 조립 시켰다.
생명체가 새로운 환경을 맞닥뜨려 살아 남듯이
나에게 너는 세상 그 자체여서 그 안에서 적응해내야만 살 수 있었다.
억지로 노력을 한 건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뿐인데
마음이 움직여서 나를 그렇게 되게 만들었다.
네가 좋아하는 것을 내가 하고 있는 것이 너무 좋았다.
네가 좋아하고 웃는 모습을 보는 것이 세상 어떤 것보다 더 날 행복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변해버린 내가 너를 질리게 만들었던 걸까?
너의 얼굴에서는 서서히 웃음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답답해 했고, 짜증을 자주 냈고, 연락이 줄었다.
예전에는 함께 웃었던 농담을, 왜 그런 말을 하냐며 혼을 냈고
이번 생엔 바꿀 수 없는 것 들에 대한 이야기를 가끔 했다.
말다툼은 싸움이 되었고, 싸움은 끝나지 않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빙빙 돌았다.
그 모든 것들이 징후였던 것 같다.
분명 징후였다. 내 세상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이 모든 것을 인지 하였을 땐, 이미 늦었고
되돌리기엔 너무 멀리 와 있었다.
너무 급격한 변화가 만들어낸 부작용 같은 것이었을까?
아니면 변함의 한계가 네 기대치에 미치지 못해서 였을까?
그렇게 넌 나를 떠났고, 나는 변하던 모습 그대로 변태를 멈췄다.
불완전한 변태 그 상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