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여행자가 길을 택했다. 왼쪽에서 첫번째 길이다. 불을 피운 자가 물었다.
"그 길을 택한 이유가 뭐죠?"
생각이 많은 듯한, 그러면서도 앳된 목소리가 대답했다.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거든요. 그럼 이만."
"만약 당신이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 길 위에서 찾기를 바랍니다. 원하는 모든 것이 주어지는 길이니까요. ^^*"
불을 피운 자의 배웅을 받으며 길 위에 선 자는 게오르그였다. 그는 목소리처럼 나이는 비록 어리지만 생각이라는 걸 하게 된 이후부터 언제나 이런 물음에 시달렸다.
'왜 사람은 마음대로 살 수 없는 것일까. 대개의 경우 불편하고 불합리해보이는 규율에 얽매어서 답답해하며 살아야하는 이유는 뭘까.'
이것이 어린 게오르그의 화두였다. 왼쪽에서 첫번째 길로 들어선 후 한 1km정도 걷자 이제 떠나온 곳이 보이지 않았다. 눈을 돌려 어디를 보나 오로지 길 뿐이었다.
"아, 삭막하다. 하다 못해 토끼라도 한 마리 튀어나오지 않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 나오는 바쁜 척하는 토끼 말이야."
말을 마치자마자 정장을 차려입은 토끼 한마리가 바쁜 듯 허둥대며 게오르그 앞에 나타났다. 틀림없이 동화책 표지에서 본 그 모습 그대로 말이다. 그리고 딱 동화처럼 말을 걸려해도 무시하고 어디론가 쏙 사라져 버렸다.
'어후 깜짝이야. 길에 왠 토끼! 정장까지 입고. 비라도 내리면 쫄딱 젖을 텐데. 그런 옷은 안 어울리지."
이렇게 말하자 갑자기 마른 하늘에서 비가 내렸다.
'뭐야. 말하는대로 다 이루어지는 길이야?"
순간 큰 행운을 얻은 듯한 게오르그는 마침 피곤했던 터라 햇살이 잘 드는 집과 보송하고 폭신한 의자와 따뜻한 벽난로가 있는 방을 원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대로 실현되었다. 그렇게 먹을 것, 입을 것, 놀이와 휴식이 풍족한 속에서 석달 열흘을 살다보니 참으로 멋대로 할 수 있는 안락한 생활이란 게 별 것 아니게 느껴졌다.
"나만 이렇게 살면 뭐해. 다른 사람은? 다른 사람도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세상이어야하지 않겠어?"
이렇게 말하자마자 게오르그는 모두가 제멋대로 할 수 있는 곳으로 떨어졌다. 코끼리가 사자에게 안마를 받고, 사자가 하늘을 날아다니고, 공중에 꽃을 심어 재배하는 자가 있고, 100개의 발을 가진 뱀이 기어다니고 - 아니, 걸어다니고-, 일 하지 않는 자가 풍요롭게 살고, 한밤 중에 톱질을 하고, 24시간 잠을 자고, 아무리 먹어도 줄어들지 않는 음식이 있고, 100개가 넘는 세상의 말을 모두 구사하는 사람이 있고, 누구와 싸우더라도 이기는 자가 있고, 그리고 무언가를 얻기 위해 애써 노력할 필요가 없는 곳. 더불어 이 곳에서는 타인을 위해 무언가를 배려할 필요도 없었다. 단지 "난 **을 원한다"라고 말하기만 하면 모든 것이 그대로 실현되었으니 말이다.
"모두가 자유로운 곳이 꼭 이상적이지는 않구나."
쓸쓸해진 게오르그는 다시 길 위에 서게 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이내 토끼를 만나고, 비가 쏟아졌던 그 곳으로 돌아왔다.
"원없이 멋대로 했는데, 왜 이렇게 피곤한거지? 게다가 재미도 참 없군. 역시 앞 일을 모르고,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게 좋은 거로구나. 성취감도 있고. 남을 생각하면서 행동하는 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흥분되는 일이기도 해. 내가 조금은 멋진 사람이 된 것처럼 느끼게 해 주니까."
길 위에서 게오르그는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를 소원을 말했다.
"내 소원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게 해줘.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인 다음에 필요하다면 나에게 행운이 올 수 있게 해 주면 고맙고. 노력 없이 얻어지는 것은 이제 사양할게."
그리고 그 말대로 되었다. 게오르그는 길을 걷다 시냇물을 만나면 물장난을 쳤고, 나무 그늘이 있으면 늘어지게 잠을 잤다. 길동무를 만나면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지게 되면 아쉬움을 토로했다. 때로 힘든 일에 부딪히기도 했지만 대개의 경우 노력을 통해 극복할 수 있는 것이었으며, 참 곤란한 일이라고 느껴졌을 때에는 때마침 도움을 주는 사람이 나타났다. 제멋대로 할 수 있었을 때보다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게오르그는 생각했다.
때로, 세상이 내맘대로 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애써 봤는데도 잘 되지 않는다고 말이다. 어쩌면 세상은 정말 귀머거리에 장님 그리고 벙어리일 지도 모른다. 철모르는 아이 같아서 엉뚱한 결과를 내줄 때도 있고, 누가 보더라도 불공평한 처사를 할지도 알 수가 없다. 그 때 한 번쯤 생각해 보자. 내가 세상을 내 맘대로 움직일 수 있을 만큼 성숙한 인격과 역량을 가지고 있는지 말이다. 세상은 어쩌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상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조화롭고, 공정한 인간의 출현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