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딱뚝딱. 쿵탕쿵탕. 어이, 목재가 더 필요해. 지금 올려보낼게. 이봐, 조심해야지. 안전모는 필수야. 다치면 안돼. 뚝딱뚝딱. 퉁탕퉁탕.
소란스러운 소리들. 지금 물나라에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댐을 만들고 있나봐. 그것도 한꺼번에 여러 군데에서 말이야."
"그러게. 온 나라 사람들이 모두 공사에 동원된 것 같은데."
온갖 것이, 심지어 못 한 조각까지도 시끄럽게 움직이는 것 같은 물나라는 딱! 지금! 마치 거대한 폭풍이 휩쓸고 간 것 같은 모습이었다.
바쁜 상황에서 잠시 일손을 놓고 쉬고 있는 사람들의 무리가 있어 공주와 초챙은 조심스레 다가가 보았다.
"온 나라가 마치 '지금은 공사중'인 것 같군요. 무슨 일이죠?"
그러자 나이가 지긋해보이는 사람이 간결하게 말했다.
"보다시피. 지난 해에 큰 수해를 입었는데, 올해에도 큰비가 올 거라해서요. 홍수를 조절할 수 있는 댐을 건설중이라오. 게다가 수년 내에는 가뭄도 닥칠거라 하고 말이오."
"그렇다고 온 나라를 뒤집어엎다시피하나요?"
"물에 떠밀려 모두 죽는 것보다는 낫지요. 지난해에 수백 명이 물 앞에 무릎을 꿇었으니."
물이 초목을 푸르게 하는 일만 하는 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생명들의 일상을 송두리째 뽑아갈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던 공주는 온통 퉁탕거리는 속에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잠시 채찍뱀과 그네와 쪽지도 잊고 말이다. 그 때였다.
"그렇다고 내 그네까지 뺏어갈 필요는 없잖아요."
라는 외침이 들린 건 말이다. 그네 탈 나이는 한참 지나보이는 청년이 한 쪽 구석에 웅크리고 있다가 말을 한 것이다. 아무래도 협박쪽지를 보낸 녀석 같다.
"무슨 그네 말이야?"
책임자인 듯한 사람이 물었다.
"우리 집 앞에 있던 그네요. 폭우에도 끄떡없었는데, 이번에 댐을 만들면서 수몰당하게 생겼잖아요. 어떡할거예요?"
청년이 공주와 초챙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외국에서 온 것을 아는 모양이다. 하지만 물나라의 일을 우리더러 어쩌라고.
"당신들이 한 번 막아봐요. 무조건 댐만 많이 건설한다고 홍수를 막을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거 알잖아요. 이렇게 온통 자연을 다 훼손시키고 물만 무서워하다가 사람들의 일상은 파괴되어도 된다는 말인가요?"
청년의 말을 듣고 있던 옆 사람이 말을 받았다.
"사실 홍수 이후 우리 생활은 바뀌었어요. 일상이라는 게 없죠. 그저 물난리를 막아야한다는 생각만 하고 지난 일 년을 살았어요. 이건 사람 사는 게 아니에요. "
불만의 목소리는 여기저기서 터졌다.
"제 가족이 가꾸던 꽃밭도 수몰이래요. 이제 몇 달만 있으면 수확할 수 있는 저 탐스러울 사과도 거두지 못하죠. 작은 불씨에 놀란 사람들이 언제나 방화복을 입고 지내는 것과 같아요. 지금 이 나라 사람들은 물 공포증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있어요."
"댐이란 게 정말 이렇게 곳곳에 많이 필요한 건가요? 사람들의 터전을 꿀꺽 집어삼키고 우리는 어디서 다시 살아가야 하죠?"
일순간 뚝딱거리는 소리가 멈추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말이다. 그리고 망치를, 톱을, 벽돌을, 나무를, 굴삭기를 놔두고 모두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 주위로 모여들었다.
"..뭐야, 초챙. 설마 싸움이라도 일어나려나?"
"...흠. 그런 건 아닌 것 같아. 아마 지금까지 하지 못 했던 일. 바로 대화를 하려나봐. 다들 물에 대한 공포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서 현실을 직시할 여유가 조금은 생겼나봐."
초챙의 말대로 사람들은 저마다 댐의 필요성에 대해 말을 하고 있었다. 합리적인 예측을 하고,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모습들이 진지해보였다.
".. 그들에게는 시간이 필요했던 거로구나. 충격을 가라앉히고 다음을 생각할 시간 말이야."
"그나저나 채찍뱀은 어덯게 된거야?"
그 때 대화에서 잠시 빠져나온 '그네'를 얘기하던 청년이 말했다.
"어, 미안해요.그런 쪽지 남겨서요. 얼마 전에 손톱이 하얀 어떤 여자가 찾아와서 당신들 얘기를 해주며, 그 쪽지를 남기면 그네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해서 그랬어요."
"이봐요. 우리가 한 일은 없잖아요. 그냥 여러분에겐 시간과 기회가 필요했을 뿐이에요. "
"지금 보니까 그러네요. 하지만 그 때는 몰랐어요. 늘 지나간 다음에 알게 되는 게 우리들이잖아요. 그리고 당신들이 우리에게는 일종의 '기회'를 제공해준 셈이에요. 불씨 같은 거 말이에요."
이렇게 말하고 청년은 다시 대화 속으로 들어갔다.
"이제 어쩌지?"
"글쎄. 아무래도 잘 모르겠어. 내 마법이 미치지 않는 어떤 곳에 있나봐. 채찍뱀의 존재감을 느낄 수가 없어."
막막해진 공주와 초챙. 물나라의 문제는 그 나라 사람들이 이제 이성적으로 해결할 것 같고. 문제는 채찍이이다.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찾으러 갈텐데.
"뭐, 다시 돌아가보자. 그네가 있던 자리로 말이야. 어쩌면 돌아와 있을지도 모르잖아."
달리 어찌할 방법이 없었던 공주와 마법사는 다시 휘리릭 그네가 있었던 자리로 갔다. 거기에는 채찍이는 없고 웬 멀쩡하게 생긴 소년이 한 명 있었다. 끼익끼익 그네를 타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