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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 동화

호밀밭의…     날짜 : 2005년 06월 29일 (수) 1:16:41 오전     조회 : 2480      
백 마리의 양을 치는 자가 있었다. 그는 적당히 어렸고, 또 적당히 나이를 먹었다. 그는 적당히 세상을 경험했고, 또 적당히 생각이라는 걸 했다. 그에게는 적당히 친구라는 존재들이 있었고, 적당히 다정한 이웃들이 있었다. 그는 적당히 행복했고, 적당히 쓸쓸했다.
백 마리의 양은 적당히 넉넉한 풀을 사시사철 뜯었고, 적당히 자유롭고, 적당히 구속되어 있었다. 언제나 적당히 건강하고 적당히 말썽을 부렸다. 가끔 대열에서 이탈했다가 양치기가 눈치채기 전에 곧 돌아왔다.

어느 이른 저녁, 양치기는 적당한 것보다 조금 더 쓸쓸함을 느꼈다. 그날 저녁 하늘에는 구름이 끼어 달을 볼 수 없으리라는 예상을 가능하게 했다. 양들은 이른 잠자리에 들었고, 양치기는 불현듯 할 일이 없음에 조금 화가 났다. 그래서 생각했다. '내일은 양을 내다 팔아야지.'

다음날 마을에 장이 섰다. 양치기는 백 마리의 양을 몰고 장터로 갔다.
<양을 팝니다. 사고 싶은 사람은 사러 오세요.>
말하기 귀찮은 양치기는 팻말을 세웠다. 그리고 양들 사이에 앉아 오고 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양을 사고 싶어요."
챙이 넓은 모자를 쓴 아가씨가 말했다.
"어떤 양으로요?"
"저기 왼쪽 구석에 털이 가장 보송한 저 양이요."
"그러지요. 저 양을 머리에 이고 백 걸음을 걸을 수 있으면 그 값에 팔게요."
챙이 넓은 모자 위에 양을 인 아가씨는 열 다섯 걸음을 걷다가 주저앉았다.
"다음 장날에 다시 올게요. 그 때는 양을 이고 백 걸음 정도는 걸을 수 있을만큼 힘을 길러 올거예요."
흥미로운 구경거리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었던 사람들이 다시 자신들의 일로 돌아갔다.
"양을 사고 싶어요."
이번에는 목에 굵은 목걸이를 건 마나님이었다.
"어떤 양으로요?"
"양치기 양반 바로 옆에 있는 양으로요. 그 작은 양 정도는 안고서 백 걸음 정도 걸을 수 있다우."
"그러실 것 같네요. 하지만 마나님께는 그 가격에 팔 생각이 없어요."
"그럼 얼마를 바라우."
"양털을 솜씨 좋게 깎아 보세요. 그럼 그 가격에 드리지요."
"머리는 맵시있게 깎을 수 있지만, 사실 양털을 깎을 수는 없다우. 하지만 다음 장날까지는 꼭 배워 놓을 테니 그 때 다시 나오시구랴."
두 사람의 대화를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 있던 사람들이 또다시 자신들의 일로 돌아갔다.
"양을 사고 싶어요."
이번에는 눈빛이 깊은 할아버지였다. 육십 대쯤 될까. 한 마디로 산전수전 다 이겨낸 분 같았다.
"그 작은 양의 양텰을 솜씨 있게 깎아내면 되나?"
"할아버님께는 그 가격에 못 팝니다. 양고기 스프를 만들 줄 아십니까?"
"난 채식주의자라네. 살생은 하지 않지. 하지만 양고기 스프 만드는 법을 다음 장날까지 배워 놓을 테니 그 때 꼭 나와 있게나."
사람들은 더 이상 양치기와 손님의 대화에 신경쓰지 않는 듯했다. 어차피 양을 사지 못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귀만 쫑긋 세우고 자기 일만 묵묵히 했다.
어느새 장이 파해갔다. 양치기는 한 마리의 양도 팔지 않고 산으로 향했다. 백 마리 모두를 몰고 산으로 향하면서 양치기에게는 표정이 없었다. 마지막 양털이 사라질 때쯤 장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 한 마디씩 했다.
"양을 팔 생각이 없으면서 왜 내려왔을까요."
"외로워서가 아닐까."
"다음 장날에도 올까?"
"글쎄, 뭐 오든 안 오든 상관 없잖아. 아가씨는 팔 힘을 기를 거고, 마나님은 양털 깎는 법을 익힐 거고, 영감님은 스프 끓이는 법을 배울 텐데, 누구든 손해 보는 건 없으니까."
"뭐, 다음 장날에도 쓸쓸하면 내려오겠지."
이내 날이 까무룩 저물어 버렸다. 백 마리의 양과 한 명의 양치기는 피곤했다. 달이 떴나 안 떴나 확인하지 못 하고 풀밭 울타리에서 잠이 들었다. 노곤한 잠 속에서 백 마리의 양도 한 명의 양치기도 그대로 있었다. 변한 것은 없었다.

다음 날 적당한 시간에 일어난 양들과 양치기는 적당히 풀을 뜯고 적당히 움직이다가 적당히 낮잠을 즐기고 적당히 날이 저물기를 기다렸다. 다음 번 장날에 양들과 양치기는 어쩌면 장터 구경을 다시 나갈 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구도 양을 사지는 못 할 것이다. 양치기에게는 사람 보는 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무엇이 부족한지, 그걸 양치기는 알고 있었다. 만약 양치기가 모를 만한 사람이 나타난다면, 그 때는 양 팔기를 그만 뒀다고 하면 그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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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하하 세상과 쉽게 타협하지 않는 양치기군요~^^ 잘읽었어요^^
호밀밭의…
06.29
^^;; 타협이라.. 양치기는 양을 쳐야 하니까 양을 팔 리는 없구요. ^^ 그냥 참 쓸쓸한 날이 있더라는 겁니다. ^^* 그래서 허무 이야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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