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 개의 투명하고 작은 알 중 하나가 생명으로 자라기를 기다렸다. ...그러다가... 죽었다.'
그는 어떤 형태로든 생명으로써 움직이기를 바랐다. 하지만 수 많은 알 중에서 애벌레가 되는 건 극소수이다. 대부분은 그냥 알이었다가 죽는다.
'애벌레 한 마리가 고치 속으로 들어가 인고했다. 그러다 ... 죽었다. '
그는 자유로운 나비를 꿈꾸었다. 하지만 나비가 되는 애벌레는 극소수이다. 대부분은 애벌레로 죽는다.
'나비 한 마리가 부지런히 꽃가루를 옮겨 '꽃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그러다... 박제가 되었다.'
그는 영원히 자유로운 삶을 꿈꾸었다. 하지만 생이 끝날 때까지 자유로울 수 있는 나비는 극소수이다. 대부분은 덧없이 스러지거나 박제가 된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나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아직 박제되지 않은 생명이다. 투명한 알이 꿈꾸었던, 애벌레가 바랐던, 나비가 희망했던 그 '삶'이다. 우리는 지금 살아 숨쉬고 있다. 백만분의 일 쯤에 해당하는 기적이 아닐까.
그런데도 때때로 살아있음이 기적으로 여겨지지 않거나 기쁨으로 다가오지 않는 이유는 우리의 뇌가 박제되어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너무 많은 물질과 너무 빈약한 가치. 너무 많은 상대성과 너무 기반이 약한 절대성, 너무 많은 기대와 너무 흔한 좌절. 이 다양한 마취제들이 다방면으로 우리를 무감각에 빠지게 한다. 그리고 점점 유연한 사고를 억제하고 불완전한 '나'라는 허상을 심어준다. '내가 법이고, 내가 진리이고, 내가 가장 존귀하다'고. '내가 법일 수 있는, 내가 진리일 수 있는 그리고 내가 가장 존귀할 수 있는 방법'은 이미 굳어진 뇌의 어느 부분인가에 박제되어가고 있다.
마취를 풀기 위해서는 먼저 마취제 주입을 멈추어야 한다. 그리고 기존의 마취가 풀리기를 시간을 두고 기다려야 한다. 헌데, 우리는 마취제가 대체 무엇인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다. 미스테리 물의 범인은 언제나 예상밖의 인물이듯, 우리의 우리다움을 박제하는 것이 무엇인지 '사건'이 종결되기 전에는 알아내기어렵다.
'냉소와 과도한 열정이 넘치는 이유는 여기에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짧게 해 보았다. 나는 그리고 당신은 생득적으로 해답을 알고 있다. 마취가 풀리기를 기다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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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네요. 잠시 외출했는데, 덥더라구요. 땀 흘리는 체질이 아닌데
땀 나대요. 하루 동안 보도된 너무 많은 사건 사고에 대해
'너무 더워서가 아닐까'라고 말을 했는데, 그냥 웃더라구요.
'power of one'이나 'rainmaker'가 기다려지는 오늘 하루였습니다.
건강 제일입니다. 아잣. 힘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