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선물한 가네시로 가즈키의 'go'라는 소설을 읽었다.
문장이 장황하지도, 꼬이지도않아서 단숨에 슉 읽었다.
차별.
최근에 만났던 이주노동자 소모뚜씨를 생각했다.
책의 주인공 스기하라와 같은 말을 한 것이 떠올랐다.
한국 사람, 프랑스 사람 하는 것이 참 불필요하다는 말이었다.
프랑스에 볼 일이 있으면 프랑스에 가는 것이고 나는 한국에서 볼 일이 있어 여기에 있다.
여기에 있다가 다른 곳으로 가고 싶으면 또 갈 수 있는 것이고.
누구라도 그렇다.
누구나 가고 싶은 곳에 갈 권리가 있다.
그 말을 들으며 비교적 흔한 표현이 되어있는 '지구여행자' 라는 말을 나는
이해는 하고 있지만 공감은 하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구에 떨어진 여행자에 불과하면서 우리는 발 닿아있는 곳에 소유권을 주장한다.
그러느라 복잡한 법도 만들고 목소리도 높이고 어떤경우 목숨도 내어놓는다.
내가 만든 법에 너는 끼워줄 수 없다던, 어릴 때 사촌들과의 소꿉놀이 판에서 받았던 크나큰 상처를 떠올렸다.
내 인생이 계속 그런식으로 흘러왔다면 나는 맨정신으로 버틸 수 있었는지를 생각해봤다.
소모뚜씨를 만나기 전, 이 책을 읽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그랬다면 그 사람의 말을 '이해'가 아니라 '공감'할 수 있었을 텐데.
더 진심어린 맞장구 쳐 줄 수 있었을 텐데.
대화도 해 보기 전에 뿌리, 국적, 근본이라고 하는 것들을 어떤 사람을 짐작할 수 있는
요소로 삼는 습관은 상당히 비논리적이고 미신적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