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넘게 살며 이리저리 부딪혀 가장 크게 배운 것은 사람을 가리는 일이다.
두 번 볼 일 없는 사람, 내가 마음을 주지는 않았던 무수한 인연들에 대한
쓸데없는 책임감, 미숙하고 후회되는 일들에서 조금은 놓여날 수 있게 되었다.
'아무렴어때' 해 버리니 잠자리에서 허공에 해대던 발길질이 잠잠해 졌다.
세상과 적당히 거리두었고 필수적이라고 검열한 연결고리만 남겨두게 되었다.
가끔 심심하고 무료하지만 마음의 평화가 간절히 필요하던 나는 지금의 생활이 대체로 만족스럽다.
대학 후배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의 검열에 들지 못한 변두리 인연이었다.
그래서 나의 결혼식에도 부르지 않았다. 몇년간 왕래없던 사람에게 내가 염치없어 보일까봐 겁이났다.
어쩌면 내가 상대방의 변두리 인연일까봐 두려웠던 것 같다.
바쁘게 사느라 나는 알던 사람들과 자주 만나지 못했다.
그것을 인식했지만 쏟아지는 사회의 요구에 과부하가 걸려버려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우리는 공평하게 서로의 현재에서 종적을 감추었지만
오랜만에 들려온 결혼소식에, 그 친구와 한 때 같은 시간, 공간을 공유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조금은 쓸쓸하고 또 씁쓸했다. '아무렴 어때'의 오남용이었다. 또 나의 검열의 잣대가 바르지 않은지도 모른다.
마음에 달린 문은 닫기는 쉬운데, 다시 열기까지는 크나큰 용기와 변화가 필요하다.
혼자인 안전함을 버리고, 상처받을지도 모를 가능성을 향해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전화 한 통을 걸어 축하한다고 말해볼까,
여유가 생긴 틈으로 그런 생각들이 비집고 나왔다.
나의 변화를 평화라고만 생각했는데,
오늘 다시보니 그저 겁쟁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