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 그 골목길에 서 있어.
철제 펜스에서 서늘한 냉기가 소리처럼 전해지던 12월 그 날
너의 집으로 올라가는 골목길 노란 나트륨 등 아래에서
너는 나에게 이별을 말했지
전혀 예상 못했던 것은 아니었어
버스에서 내려 편의점을 지나 골목길로 들어설 때부터
너의 굳은 표정, 말투, 걸음걸이 심지어 라쿤털 달린 모자의 흔들림까지
이미 나에게 헤어짐을 말하고 있었으니까
불가항력이란 게 이런 느낌일까
8월의 태풍처럼, 내 심장까지 다 토해내겠다고 하면 이 극저온의 추위가 물러서줄까
아니면 10월의 낙엽처럼 떨어지지 않겠다고 너에게 매달리면, 잠시나마 내 손을 잡아 줄까
그렇게 수 많은 생각들이 뒤엉켜 점점 하얗게 발화 하는 동안
귓속에서는 냉기가 긴 선처럼 들렸고
내 몸은 이미 얼어붙은 생선처럼 그 골목길에 뻣뻣이 서 있었어.
겨울이 10번을 더 태양을 돌아
내년 5월 결혼을 약속한 그녀와
웨딩드레스는 아름다운지 식장의 밥은 맛이 있는지
예물 예단은 안 하기로 했고, 폐백은 할건지 말 건지
시시콜콜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들어온 나는
여전히 12월
연희동 그 골목길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