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뚜라미 시 모음> 윤동주의 '귀뚜라미와 나와' 외 + 귀뚜라미와 나와 귀뚜라미와 나와 잔디밭에서 이야기했다 귀뚤귀뚤 귀뚤귀뚤 아무에게도 알으켜 주지 말고 우리 둘만 알자고 약속했다. 귀뚤귀뚤 귀뚤귀뚤 귀뚜라미와 나와 달 밝은 밤에 이야기했다. (윤동주·시인, 1917-1945) + 귀뚜라미 밤길을 걸어 돌아오는데 컴컴한 구석빼기에서 귀뚜라미가 운다. 귀뚤귀뚤 귀뚜르르르 귀뚜라미가 울자 컴컴하던 구석빼기가 환해졌다. (이상교·시인, 1949-) + 귀뚜라미 벌개미취 이웃에 사는 귀뚜라미 귀뚤귀뚤 시든 민들레 밑동에 사는 귀뚜라미 귀뚤귀뚤 울타리 돌 틈에 사는 귀뚜라미 귀뚤귀뚤 먹을 게 없진 않은지 쓸쓸하진 않은지 귀뚤 귀뚤 귀뚤 귀뚤 서로 멀지 않는 곳에서 묻고 또 묻는다. (이상교·시인, 1949-) + 귀뚜라미 귀 뚜르르 귀 뚜르르 귀뚜라미는 연주도 잘 한다 음악 학원에도 안 가는데 어떻게 저렇게 연주를 잘도 하지 (유응교·시인, 1943-) + 귀뚜라미 슬피 우니 가을인가 봐 달빛은 기우는데 처량한 울음소리 누구를 그리기에 그리도 서러운가 외롭다 울지 말거라 외로움이 너뿐이랴! (하영순·시인) + 귀뚜라미 귀뚜라미 울음은 아버지 제삿날 밤 뜨는 초승달같이 맑다 귀뚜라미 울음은 달빛에 둥그래지는 밤이슬같이 차다 귀뚜라미 울음은 가을 밤 고향 가는 길같이 길게 이어진다 귀뚜라미 울음은 어릴 적 어머니 치마폭같이 나를 감싼다 귀뚜라미 울음은 동구 밖 느티나무처럼 누굴 기다린다 (이종만·시인, 경남 통영 출생) + 귀뚜라미 포항 도립병원 결핵병동에서 시를 뱉어내듯 각혈을 하던 이십 년 전의 여류시인 서정희를 생각한다. 시든 잔디에 앉아 그의 맑은 눈으로 병든 가을 하늘을 쳐다보다가 그는 떠났다. 세월 속에 묻혀간 그의 시집 '배암'도 지금은 퇴색된 파본으로 꽂혀 있지만 오늘이 가고 내일이 오면 그의 생명의 가지에는 꽃이 필 것인가 가을꽃 자리에 내려온 햇살이 하늘나라 바이올린 줄을 타고 가을밤 창밖에 어리는 달빛으로 와서 귀뚜라미 소리로 홀로 울고 있었다. (정민호·시인, 1939-) + 귀뚜라미 청승맞은 울음소리 같기도 하고 온몸으로 부르는 생명의 찬가 같기도 한 긴 가을밤 지새는 저 쉼 없는 소리 귀뚤귀뚤 귀뚜르르 귀뚜라미 소리에 가을이 새록새록 깊어간다. (정연복·시인, 1957-)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