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 어김없이 드러나는 특징 중에 하나가
그 사람을 한없이 챙겨주고 싶어지는 것이다. 이건 그 사람이 잘
먹는 음식인데, 이건 그 사람에게 어울릴 만한 옷인데, 이건 그
사람이 좋아하는 음악인데...
사랑은 그런 일이다. 그 사람에게 한없이 마음을 써주고 싶은 것.
그것이 설혹 자기 전부를 바치는 일이라 할지라도.
영국의 어느 해변가 한 작은 마을에 필립과 아든이라는 청년과
애니라는 아름다운 처녀가 살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함께 어울렸던
그들은 자연스레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지만 혼기가 찬 애니로서는
한 남자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고민한 끝에 그녀는 다정하고
내성적인 필립보다는 활달한 성격을 가진 아든과 결혼을 했다.
그런 어느날, 아든은 배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가게 되었다. 하루
이틀 만에 돌아오는 짧은 여행이 아니었기에 아든은 친구인 필립
에게 사랑하는 아내를 부탁하고 떠났다. 필립은 아든이 없는 동안
정성을 다해 애니를 보살폈다. 그런데 얼마 후, 아든이 타고 간
배가 침몰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게 아닌가. 타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죽었을 거라는 아주 비통한 소식이었다.
하지만 애니는, 사랑하는 남편 아든만은 어딘가에 꼭 살아 있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믿음과는 달리 아든은
수년 동안 돌아오지 않았고, 그러자 필립은 애니에게 그만 아든을
잊고 자기와 새 출발을 하자고 제의했다. 애니는 묵묵히 고개를
저었다. 또다시 긴 세월이 흘렀지만 아든에게선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그러자 이젠 그의 죽음이 확실하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
었던 애니. 혼자 힘으로 살림을 꾸려나가기 벅찼던 그녀는 마침내
필립의 요청을 받아들여 그와 재혼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무슨 운명의 조화일까.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든이
천신만고 끝에 살아서 돌아온 것이 아닌가. 오로지 애니를 사랑
하는 마음 하나로 온갖 역경을 헤치고 그는 살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애니의 재혼 소식을 들은 그의 심정이 어떠했겠
는가.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절망감으로 뜨거운 눈물만 흘릴 뿐
이었다.
날이 저물어 동네 사람에게 그 집을 물어 찾아간 아든. 거기서
그는, 식탁에 둘러앉아 저녁 식사를 하는 그들의 행복한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꿈속에서도 그리던 사랑하는 아내 애니, 그러고
친구 필립. 당장에라도 그 자리에 뛰어들고 싶었지만, 그러나
아든은 말없이 뒤돌아 섰다. 그들의 행복을 위해 자신은 떠나기
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알프레드 테니슨의 소설'이녹 아든'. 누가 나에게 사랑에 대해
물을 때마다 나는 이 이야기를 해준다. 다른 이야기를 덧붙일
것도 없이 이 이야기 하나면 사랑이 어떤 것인가를 확연히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사랑은 이처럼 자기 희생이 따를 때 아름
답고 영롱하기에.
사실 '사랑'이란 단어를 우린 너무 쉽게 쓰는 듯하다. 말로만
사랑이고 말로만 고독일 뿐,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랑을 만나기가
참으로 어려운 것 같다. 아마도 그것은 우리가 만남과 헤어짐을
너무 가볍게 생각해서 오는 결과가 아닐는지.
진정한 사랑. 말이나 글로써가 아닌 실천으로써의 사랑. 가슴이
무너지는 아픔을 동반한다 할지라도 사랑하는 그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떠날 수 있는 사랑. 그런 사랑은 소설 속에서만 가능한가.
과연 그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