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 이년 전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던 어느 일요일이었다.
외출 후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가 책상 서랍에 넣어 둔 돈 중
5백원짜리 지폐 한 장이 없어졌다고 했다.
그때 집에는 나 혼자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나를 의심하여
다짜고짜 내게 왜 돈을 훔쳤느냐고 물었다.
나는 단호하고 무서운 다그침에 질려서 결국
\"돈을 훔쳐서 과자를 사먹었다\" 는 거짓 자백을 하고 말았다.
그러나 아버지 손에 이끌려 간 가게에서 내가 과자를 사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아버지는 내가 거짓말을 했다며 더욱 화내셨다.
그 때문에 나는 그날 오후 내내 벌을 서야 했다.
결국 나의 결백은 그날 저녁 가족들이 모였을 때에야 밝혀졌다.
그로부터 팔 년 뒤, 아버지는 병을 앓으시다가 돌아가셨는데
당신의 죽음을 미리 짐작하시고 가족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며
재산 분배 등을 정리한 '유훈집'을 남기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나는 그 유훈집을 읽다가
너무나 가슴 아픈 아버지의 글을 보게 되었다.
\"철한이에게 너무 미안하구나.
어린것이 그때 얼마나 아버지를 원망했을까.
어린 너의 가슴에 잊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것 같아
두고두고 마음에 꺼렸는데...
하지만 네가 미워서 그랬겠느냐.
물론 성급하게 너를 의심한 것은 아버지 잘못이다만
행여 슬쩍 넘어가면 나쁜 버릇이 생길까 걱정이 되어서...
미안하구나 아들아, 너도 이 다음에 크면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해 주겠지.\"
나는 눈물이 앞을 가려 더 이상 읽을 수 없었다.
그토록 오랫동안 그때 일을 두고두고 가슴 아파하셨다는 아버지의 마음,
세 살 난 아들을 두고 있는 지금에야 나는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식을 의심하고 오후 내내 벌을 주신 아버지는 그때 얼마나 괴로우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