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전형적인 경상도 사나이인 데다 2대 독자 종손이셨다.
그래서 우리집에 내리 딸 다섯에 이어 여섯번째로 3대 독자 남동생이 태어나던 날,
온 동네는 잔치 분위기였다.
그런데 얼마 뒤 아버지가 폐결핵 진단을 받았다.
게다가 피를 토하는 아버지를 보고 할아버지가 충격으로 쓰러지셨고,
언니마저 복막염으로 대수술을 받아야 했다.
엄마는 집안 살림에 농사일, 병간호까지 도맡아 하며 애를 쓰셨지만,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결국 돌아가시고 말았다.
지난 시간들은 엄마에게 정말 커다란 고통이었다.
그 악몽 같은 시간을 엄마가 어떻게 견뎌 내셨는지 우리는 늘 궁금했는데,
어느 날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엄마는 꿈을 꾸는 듯한 표정으로 아버지와의 추억을 이야기해 주셨다.
버스나 자가용을 구경하기 힘들던 오래 전 어느 겨울날,
친척 결혼식에 갔다가 막차를 놓치고 걸어와야 했다.
그런데 한참을 걸었을까.
권위적이며 목석 같던 아버지가 슬며시 엄마 손을 잡으며
“요즘 힘들지? 미안해”라고 하셨다.
엄마는 당황해 아무 대꾸도 못하고 있는데,
마침 두 분 앞에 큰 시내가 나타났다.
그러자 아버지가 갑자기 엄마에게 등을 내보이며 업히라고 하셨다.
엄마는 아까보다 더 당황했고, 감히 아버지 등에 업힐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성화에 못 이겨 엄마는 결국 아버지 등에 업혀
그 차디찬 시냇물을 무사히 건넜다.
아버지 등에 업힌 그때 엄마는 온 천하를 다 얻은 기분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앞으로 어떤 고난이 있더라도 아버지만을 사랑하며
끝까지 함께할 것이라고 마음속으로 결심하셨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