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가까이 만화 <검정고무신>의 스토리를 쓰면서 일주일에 한 번은
어김없이 어린 시절로 돌아가야만 했다.
기억이란 타임머신이 어느 시골 작은 읍내 골목길에 내려앉았다.
그 해 겨울은 유난히 추워 문고리에 손이 쩍쩍 달라붙을 정도였다.
검정고무신을 신고 다니던 한 아이는 물기 촉촉한 엄마 손으로 퍼 준
뜨거운 시래기국 한 대접과 숭숭 썰어 놓은 김장김치에 보리밥 한 그릇을
뚝딱 먹어 치우고 양철 대문을 박차고 학교에 갔다.
아이가 교실에 들어서면 선생님이 막 지핀 난로에서 매캐한 연기가 새어 나오고
당번은 창고에서 타 온 조개탄을 활활 타오르는 장작 위에 집어넣는다.
“도시락 올려라.”
난로 뚜껑을 닫고 손을 툭툭 털던 선생님 말씀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우르르 쾅쾅 앞 다투어 도시락을 올려놓는 아이들.
수업중에 당번은 밑에 있는 도시락을 위로 올리고 위에 것을 밑으로 내린다.
점심시간이 가까워 오면 김치 익는 냄새와 밥 타는 냄새로 뒤범벅이 되는 교실.
아이의 옆자리는 어제 전학 온 낯선 친구다.
얼굴은 말대가리처럼 길쭉하고 웃을 때 누런 이빨이 유난히 눈에 띄는
깡촌에서 살다 온 친구.
팔꿈치랑 무릎을 덧대어 기웠고 웃옷 주머니는 들판에서
고구마 구워 먹다 태웠는지 너덜거렸다.
그리고 책가방 없이 보따리에 책을 싸 가지고 왔다.
“내가 가방 줄까? 우리 형이 쓰다 만 것이 집에 있는데….”
학교가 끝나자 아이는 쌩쌩한 겨울바람에 벌겋게 익은 귓불이
시린 줄도 모르는 친구를 데리고 집에 왔다.
형이 쓰다가 버린, 양쪽으로 덮개가 있고 플라스틱 호스 같은 것으로
손잡이를 만들어 붙인 책가방.
손잡이만 바늘로 꿰매 쓰면 될 성싶다는 생각으로 책가방을 여기저기 찾았다.
친구는 마당에서 추위에 떨고 서 있는데 아무리 찾아도 가방은 없었다.
짧은 겨울해는 어느새 가 버렸고 어두운 마당에 새파랗게 얼어 있는
친구 앞으로 아이가 책가방을 들고 왔다.
“한참 찾았네. 이거 가지고 가. 에고 추워라.”
그 가방은 아이가 자기 가방을 비워서 들고 온 것이었다.
책가방을 준 그날 밤 어머니에게 맞았던 아이는 지금 아버지가 되어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연탄불로 데워 세수할 때도 행복했고 보일러에서 데워져 나오는 물로
세수하는 지금도 행복하다.
둘 다 따뜻한 물이니까.
도래미 님 (만화 스토리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