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좀 일으켜 줘.” 손등이며 팔뚝에 주사 바늘을 잔뜩 꽂고 누워 있던 형이 말했다.
형은 방금 일어난 일에 대한 감정을 삭이고 있는 듯했다.
조금 전 형의 관장을 돕던 나현 씨를 갑작스레 들이닥친 두 언니가 끌고 나갔다.
“너 제정신이니? 빨리 가방 챙겨!” 두 언니의 거센 질책이 병실 밖에서 들려왔다.
나현 씨는 형이 간암이라는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달려온 문병인이었고 곧바로 간병인을 자처했다.
한 달째 집에도 가지 않고 결혼도 안 한 남자의 병수발을 하는 그녀를 어느 부모형제가 이해할까?
“창가로 데려다 줄래?” 형의 목소리는 처연했다.
7층에서 내려다본 바깥 풍경은 분주했다.
쉼 없이 병원을 들락거리는 사람들….
순간 형의 눈빛이 빛나는가 싶더니 팔을 간신히 들어 창턱을 잡았다.
형의 눈길이 가 닿은 곳엔 두 언니와 나현 씨가 걷고 있었다.
그런데 무엇에 그리 당겼는지 그때껏 고개 숙이고 걷던 나현 씨가 우리 쪽으로 얼굴을 치켜들었다.
나는 그때 두 사람의 시선이 부딪치는 것을 아주 아프게 발견했다.
그녀는 이내 울음을 터뜨린 듯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형, 들어가자. 형보다 나현 씨 마음이 더 아플 거요. 편안히 돌아서게 하는 것도 형 몫이요.”
아! 나는 그때 형의 눈물을 보았다.
형은 나현 씨가 그렇게 떠난 지 일주일 만에 서른일곱의 삶을 접었다.
형이 죽기 얼마 전 병원 담벼락에 라일락이 가득 피어 있던 날,
나는 나현 씨에게 형 곁을 떠나라고 했다. 그녀는 울기만 했다.
그 마음의 깊이를 헤아릴 길 없던 나는 ‘형수라고 부를 수 있어 좋았노라’고 말을 돌렸고,
그 말에 그녀는 희미하게 웃었다.
결국 그녀는 형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했다.
4월이면 그녀가 생각난다.
영원토록 내 속에서 애잔한 아름다움으로 살아 있을 형수….
전성현 님 / 경기도 안양시 안양우체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