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유학 중이던 윤이상은 베를린 음악제에서마저 실패하자 크게 낙심했다.
"아무래도 난 음악가로서 자질이 없나 보오. 그만 한국으로 돌아가야겠소."
얼마 전 그는 중국 고전 음악 악보를 토대로 한 새 작품 '낙양'을 완성하자 확신을 가지고 슈프렝겔 콩쿠르와
런던 국제 음악제에 출품했었는데, 의외로 "너무 동양적이다"라는 악평과 함께 예선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그에 이어 이번 베를린 음악제에서의 탈락은 그에게 또 한번의 실패를 의미했다.
자신의실패를 반신반의하던 윤이상도 이제는 완전히 자신감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아내는 남편의 작품이 언젠가는 인정받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당신은 음악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분이잖아요.
이 작품은 언젠가 꼭 좋은 기회를 얻게 될 거예요.
너무 성급하게 포기하지 말아요."
아내의 간곡한 부탁에 윤이상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몇 개월이 지난 어느 날, 하노버의 '조이네세스 뮤지컬 오케스트라' 지휘자 베른바흐가 그를 방문했다가
우연히 '낙양' 악보를 보게 되었다.
베른바흐는 윤이상에게 그 곡을 연주할 기회를 준다면 반드시 성공시켜 보겠다고 했다.
하지만 연주회날 베른바흐가 이끄는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끝났는데도 어느 누구 하나 꼼짝도 하지 않고
그대로 앉아 있기만 할 뿐 박수를 치지 않았다.
그는 눈앞이 아찔해졌다. 그때였다.
객석 한구석에서 작은 박수 소리가 남과 동시에 연주회장은 요란한 박수 소리로 떠나갈 듯했다.
베른바흐가 윤이상을 무대 앞으로 데리고 나왔다.
"아니, 동양인이잖아."
그들은 그 동안 편견을 가져왔던 동양인의 출현에 몹시 놀라워하면서 감탄했다.
베른바흐가 나직이 속삭였다.
"정말 축하합니다. 사람들이 박수 치는 것을 잊을 만큼 당신의 곡에는 강렬한 혼이 숨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