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지하철도 없고 버스도 별로 없는 곳으로 이사를 했다.
그 전에는 강의가 끝난 뒤 친구들과 어울리기 바빴지만 지금은 오가는 것조차 힘겹다.
친구들과 어울리다가도 어두워지면 집에 가는 게 걱정되어서 늘 서두르는데,
그래도 지하철을 타고 버스로 갈아타고 이리저리 치이다 집에 가면 한밤중이었다.
우리 동네는 이제 막 아파트를 짓기 시작한 곳이라 동네 사람들도 다 힘들긴 마찬가지였다.
버스는 20분에 한 대씩 있는데 날이 추워지면서 사람들은 조금 기다리는 것도 짜증스러워 했고
버스에 대한 인식은 더욱 안 좋게 변해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버스를 기다리다 지친 사람들이 버스가 오자마자 우르르 버스에 올랐다.
자리는 금세 다 찼고 버스는 출발했다.
그런데 버스 벨이 고장난 것이다.
사람들이 내리는 지를 확인할 수 있는 벨이 고장이 나자 사람들은 내릴 때마다 벨을 누르는 대신
“내려요!” 하고 소리를 질러야 했다.
버스 기사아저씨도 난감해했지만 어찌 손 쓸 방법이 없으신 듯 했다.
한참 뒤 한 쌍의 젊은 남녀가 내려야 할 곳을 놓치고 말았다.
그들은 화가 나서 “아저씨! 벨이 고장났으면 내릴 사람이 있는지 물어서라도 확인해야 되잖아요!” 하고
퉁명스럽게 쏘아붙이며 내렸다.
그 소리가 얼마나 신경질적이었던지 버스 안은 잠시 썰렁한 기운 속에 고요가 감돌았다.
나는 내가 그 사람이 아니어서일 수도 있지만 속으로 벨이 고장난 거 알면서 먼저 내린다고 말하지 않고
아저씨께 화만 내는 그 사람이 잘못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실수는 누구나 하는 건데 작은 실수는 눈감아 드려도 되지 않을까?
사실 길이 좋지 않은데 버스를 운전하고 하루 종일 얼마나 피곤하시겠는가.
그렇지만 버스 안의 고요는 계속됐다.
아저씨도 속이 상하신 듯 얼굴이 굳어 있었다.
그때 그 분위기를 일 순간 깨 버리는 일이 있었다.
한 아저씨가 세 살쯤 된 남자아이를 안고 내리게 되었다.
그런데 아빠 어깨에 꼭 붙어 안긴 남자아이가 운전 기사 아저씨에게 크게 인사했다.
“아조씨, 고마씁니다. 아녀히 계세요.”
아저씨도 잠깐 깜짝 놀라시는 듯하더니 금세 얼굴을 환하게 펴고는 “응. 안녕!” 하면서
손을 높이 흔들어 주셨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했던가?
그날 나도 버스에서 내리며 기쁜 마음으로 크게 인사했다. “고맙습니다!”
정연이 님 / 충북 충주시 교현1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