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 년 전 부산에서 중학교 교사로 재직할 때의 일이다.
당시 중학교는 추첨을 했는데, 교문조차 없는 신설학교인 우리학교에 당첨되면
재수가 없다고 하여 온 가족이 낙심할 정도였다.
그 무렵 무슨 그룹의 회장 아들이 우리 학교에 입학했는데, 공교롭게도 내가 담임을 맡게 되었다.
입학식이 끝나고 며칠 뒤 반장선거를 하는 날, 나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나는 오늘 우리 반 반장에 당선되는 학생에게 축하하는 뜻에서 아주 귀한 선물을 줄 예정이다."
투표가 끝나자 그 애가 압도적인 표 차이로 당선되었다. 나는 그애에게 말했다.
"우리 반 반장으로 당선된 것을 축하한다.
아까 말했듯이, 내가 반장에게 귀한 선물을 하고자 한다.
만약, 마음에 들지 않으면 딴 학생에게 줄 생각이다."
그때 아이들은 만년필이나 공책, 사전류 등을 상상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준 선물은 너무도 엉뚱한 것이었다.
"내가 줄 선물은, 한 달 동안 우리가 사용하는 화장실을 청소하는 일이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뜻밖의 선물이라 반 아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애도 깜짝 놀란 얼굴이었다. 나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반장은, 아이들 청소감독이나 하고, 떠드는 아이들 이름이나 적는 것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우리 반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반장인 네가 우리가 쓰는 화장실을 깨끗이 청소하는 일부터 모범을 보이기 바란다."
순간 교실 안이 잠잠해졌다.
그 애가 선뜻 대답을 하지 않기에 나는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애가 큰소리로 또렷하게 대답했다.
"고맙습니다. 받겠습니다." 아이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크게 손뼉을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