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근하게 감겨 오는 목소리, 부드러운 이미지와는 달리 영화배우 한석규는
한번 결심하면 어떻게든 해내고야 마는 독한 면이 있다.
지금 그가 한국을 대표할 만한 배우가 된 데에는 고달픈 무명 시절
갈고 닦은 그 독한 면에 힘입은 바가 크다.
맨처음 그에게 주어진 배역은 가마꾼 네 명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그는 '무슨 배역이든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나도 주인공이 될 수 있겠지' 하며
실망하지 않고 이를 악물었다.
야산에서 가마를 들고 뛰는 일은 이만저만 힘든게 아니었다.
가마 무게 자체가 너무 어마어마한 데다 사람까지 타고 있으니 숨이 턱에 차고
온몸에는 땀이 비 오듯 했다.
촬영 뒤에 밥을 먹을 땐 수저를 들 힘조차 없었다.
그 뒤에도 그는 오랫동안 계속해서 단역만 맡았지만, 극중 단 한 마디의 대사라도 주어지면
며칠 동안 궁리하고 연습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한 번은 그에게 웨이터 역할이 주어졌는데, 주어진 대사는 "뭘 드시겠습니까?" 그 단 한 마디였다.
그 대사를 몇 번이나 곱씹다가 그는 직접 웨이터의 행동과 말씨를 관찰하기 위해 술집에 갔다.
그리고 웨이터의 목소리, 손놀림을 유심히 보기 위해 시도때도 없이 웨이터를 불렀다.
"물 한잔 만 갖다 줘요." "냅킨 좀 주시겠어요?" 등등 술과 안주는 조금 시켜 놓고
남 모르는 꿍꿍이로 심부름만 시켜 대며 그 대사를 수도 없이 연습했다.
그는 이렇듯 작은 배역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고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 결과
마침내 오늘날의 대배우가 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를 볼 때면 "자기 자신에게는 가을 서리처럼 차갑게 하고
타인에게는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하라"는 옛 성현의 말씀을 떠올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