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이병률
당신은 나에게 해바라기를 건네준 날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기차 창밖으로 해바라기 밭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을 때 내 손을 잡아끌며
'여기서 내리자!'라고 소리쳤던 기억을 되살리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미처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고 기차표를
해바라기 밭에 내던져버렸던 것도.
그 기억은 이제 내가 상관할 일이 아닌 때가 되었다고 해도
난 그 기억만으로 가끔 힘이 난다.
기차역을 등지고 해바라기 숲으로 내달을 때
당신의 몸을 빠져나온 웃음소리, 당신의 머리카락이
만들어낸 바람까지도 어쩌면 그토록 진할 수 있었는지
눈이부셔 하마터면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싶었다고
이제야 비로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때 우리를 물들인 건 노랑이었으며,
해바라기 주변을 윙윙거리던 벌떼들의 소음이었겠으나,
그때 우리가 만들어낸 흥취만으로도 해바라기 숲을
갈아엎고도 남음이 있을 것 같진 않았던가.
두 인간에게 찾아온 광란의 상당 부분을 다 쓰고 난 뒤
어지러워하던 그 날 이후,
노란색을 그토록 사무치게 느꼈던 적이 있었던가.
노란색 앞에서 토하고 싶었던 적 있었던가.
고마운 것이다.
그 자리에 같이 있을 수 있었으니.
다 끌어안고도 남는 것들이 있었으니.
노란색 포스트잇에 ‘밥 꼭 챙겨 먹어요’라든가
‘내일 오후에 잠깐 들를게요’라고 썼던 글자들을
어느 날 하루아침에
‘이제 그만 할래요’ 라고 바꾸고 잠적해버린들,
그것이 그만 둘 수 있는, 버릴 수 있는 마음이던가.
사랑은,
그만 둔다고 하는 순간부터 멀어져도, 헤어져도,
보이지 않아도 여전히 사랑이질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