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雪) */ 안재동
함박눈이 갑자기
사방에서 사르락사르락 내리고 있었다.
자장가보다 정겹고,
졸리도록 고운 소리로.
콧잔등에
사과보다 둥그런 엉덩이를
연방 얹었다 사라지곤 하는,
아기 주먹씩이나 될 법한
커다란 눈송이.
갓 자은 솜보다 보드라운 감촉
하늘거리는 그 춤사위에
은근히 취하여 갔다.
그렇게 마냥, 얼~쑤 좋기만 하여
취하고 또 취하다
언뜻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어느새
눈(雪)의 눈(眼)보다
작은 존재가 되어 있었다.
세상 그 어느 것에 대해서도
강한 존재일 수 없던 성근 눈송이.
그 하나하나가 서로 뭉치고 또 뭉쳐
산이며 들판이며 집이며,
차와 도로까지,
온 세상을 짓이기고 있는 것이었다.
사람이 만든 것들을 몽땅
정지시켜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