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패 * / 안재동
며칠 전 사들여 베란다에 두었던 밀감 한 상자
온 가족이 수시로 몇 개씩 집어먹는다
먹을 때마다 때론 좀 남겼다가 아껴먹어야지 한다
어느 날 보니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 밀감
먹으려고 집어들다 보니
몇 개씩이나 껍데기에 허부옇게 보기 싫은 뭔가 생기면서
안쪽으로 농해 들어가고 있었다
많이 농한 것들도 있고 시작단계인 것들도 있다
아이쿠, 이거야말로 아끼다가 X 됐네
사과나 배 같은 다른 과일도 오래 두면 마찬가지
사람 먹는 음식은 어떤 것이든 이와 다르지 않으리라
오래 두면 상하다가 썩다가, 결국은 내버려야만 하는 것
여차 하단 먹지도 못하고
근데, 먹어도 먹어도 느낌 없는 것들이 있으니
두어도 두어도 농하지도 썩지도 않는 것이 있으니
그 이름 돈과 보석과 권력이로세
소화되지 않아 위장 망가지더라도 더 먹고 싶은 것
아무리 무거워도 더 껴안고 싶은 것
기둥이 흔들리는데도 더 높이 올라가고 싶은 것
세상엔 정작 가장 빨리 썩어버려야 할 것들이 가장 오래
건재할 때가 있다
그들 앞에서는 결국 사람이 먼저 썩고 마느니
좋은 이나 나쁜 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