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덩이 * / 안재동
어느 시점부턴가
내 땅 일부가 꺼져 구덩이가 되었다
비가 오니 빗물로 채워졌다
하늘에서 구덩이로 바로 들어가는
깨끗한 빗물뿐 아니라
주변 여기저기를 훑다가 나타난 물까지
쓰레기며 오물까지 동반하고서,
그것들은 서로 뒤섞여
족보가 불분명해지고 말았다
이 구덩이는 그렇게
채워지는 온갖 것들로 포화하는 순간까지
무엇이든 말없이 받아들일 것이다
여기에 고인 것들이
다지고 뭉쳐져
다른 아무것도 침투하지 못할 때까지
이 구덩이로 오던 그 무엇들은
어느 순간부턴 이곳에 짐을 풀지 않고
지나칠 것이다
어쩌면
어떤 것도 여기로 더는 오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