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르지 말고 가만 가만 무릎 아래 가끔씩 낯 내비치는 길목을 따라 서서히 스며들어야 한다. 천천히 발소리를 죽여 가며 물기 젖은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바람의 손짓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소리 없이 흔들리는 안개의 늑골 사이를 파고들어야 한다. 두 볼에 와 닿는 안개의 손길, 귓구멍을 간질이는 안개의 숨결, 흐릿한 상형문자를 중얼거리는 안개의 말들, 아무 것도 궁금하지 않게 될 때 발밑을 흐르는 물살 위에 무장해제한 걸음을 올려놓아야 한다. 안개는 스스로를 숨기지 않는다. 저를 지우는 순간 안개는 이미 안개가 아니다. 자신을 송두리째 드러내어 누군가를 가려주는, 겉과 속이 따로 없는 안개. 거기 발을 들여놓는 순간 우리는 헤어날 수 없는 늪 가운데 빠지고 만다. 안개는 안개를 만나 안개의 일가가 된다. 안개의 마을에서 안개의 아이를 낳고 안개의 음악과 시를 낳는다. 안개의 나라에 가 닿으려면 가만히… 가만히… 그리고 천천히… 유리잔처럼 깨지기 쉬운 수정막에 음화陰畵를 새겨 넣어야 한다. 이목구비가 흐릿해질수록 점점 또렷해지는 눈빛이 새벽을 말갛게 물들일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