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가 톱을 들고 숲속에 들어섰다
나무들이 이제는 죽었다며 몸을 으스스 떤다
날을 세운 톱이
나무들의 앞을 지날 때 마다
어떤 나무는 옹이를 보여주거나 어떤 나무는
굽은 등을 내밀어 나는 아니라며 뒤로 물러선다
늙은 나무가 말했다
두려워하지 마라
제 아무리 날이 잘 선 톱이라 할지라도
자루가 없는 톱은 톱이 아니라고
그것은 다만 철판일 뿐이라고
자루가 없는 톱은 결코 우리들을 쓰러뜨릴 수 없다는 것을
너희도 알고 있지 않느냐
우리들 중 누군가가 자루가 되어주지 않는다면
철판은 영원히 톱이 될 수 없다
누구라도 자루 없는 헛톱질을 하다가 지치면
우리들 품속으로 들어와 이마의 땀을 씻는다.
이 세상 어느 톱도
자루 없이는 나뭇가지조차 자를 수 없다는 것을
톱은 나무 앞에 서보고서야 알았다
정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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