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기쁨에게
정호승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를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 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 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죽을 때
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 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워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길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이 시를 오늘 접했습니다. 모의고사 언어영역에 보기 시로 수록 되어 있었는데..이 시를 읽어 나서 도저히 문제를 풀지 못 하겠더군요. 시도 시지만 시를 읽으면서 마음 속에서 솟아오는 여운과 반성 때문에.. 그래서 시험지를 키보드 밑에 끼우고 받아 적었습니다. 항상 부끄러운 일을 했을 때 이 시를 다시 뇌면서 반성해야 겠습니다.
여러분도 이 시를 마음 속에서 읊으며 옛 시절의 부끄러움을 씻어 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