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진 유리 창 틈새로
찬바람 한 줄기가
방 안 구석구석을 휘감아 돌더니
반대편 유리창으로 빠져나가고
여행길에 스쳐지나간 줄 알았던 기억 하나가
겨울 바람 끝자락에 매달려 있다가
뎅그러니 바닥에 나동그라지는 것을 보았다
잔잔했던 기억 속의 강물이 파문을 일기 시작한다
애써 균형을 맞추어가며 쌓아가던 돌탑이 바람에 흔들리듯
기억 속의 강물은
점점 파문을 더해가고 있다.
생각하지 않았는데
아니
생각하고 싶지 않았는데
내 안에 자리잡고 있던 기억 속의 강을
내 가장 깊숙한 곳으로 밀어 넣고
굵은 쇠사슬로 단단하게 가두어 놓았는데...
언제 어떻게 빠져 나왔지 ?
다시는
보이지 않는 그 어느 것으로 인해
겨우 딱지가 내려앉은 상처에 다시 생채기를 내고 싶지 않은데...
그 것은
어쩜 어둠 속에서 먹이를 기다리는 표범처럼
여러 날을 기다려 왔는지도 모른다.
달아나고 싶다
기억 속의 강물이 범람하기 전에...
나는 지금 어둠 속으로 걸어들어 간다
어둠의 심연으로 달려간다
다시는
나를 찾지 않을 곳으로
나를 찾아 낼 수 없는 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