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 나무 * / 안재동
습기로 누글누글하던 여름달이
봉평 메밀밭에서 이지러지고
우아하고 성글성글한 가을달이
어전마을 대나무밭에서 쑤욱
얼굴을 내밀었다.
가을이 걷는 마을의 길목마다에는
감나무면 감, 대추나무면 대추,
다양한 열매들이 저마다
조금의 수줍음도 없이
탱실탱실 부푼 몸매를 자랑한다.
가을 나무는 자신의 몸에서
풍성하게 과실을 영글게 하고
보는 이가 즐겁도록
자신의 몸을 형형색색으로 가꾼다.
가을 나무는 그렇게
여느 때보다 동작이 부산하지만
길 떠날 채비하는 집시처럼
속 마음 오지게 쓸쓸해짐을 아는가.
위로하듯, 풀벌레들 곱게 노래하고
그 소리마저 들리지 않을 땐
나무는 수의조차 걸치지 못한채
모질게 찬 바람과 눈보라 속에서
조용히 잠들 준비를 해야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