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늦가을 날의 실루엣 */ 안재동
가을 막바지
찬바람 밉게 불던 날 저녁
영안실에 꽁꽁 묶여 아무 말 없던 아버지,
어린 소녀는 왠지 몰랐다.
어둔 새벽
소녀는 작은 눈망울 혜성처럼 반짝이다
할머니 품에 곤히 잠들고
별들이 슬픈 얼굴로 내려와
고사리 손을 말없이 어루만져 주었다.
아침나절
희뿌옇게 안개 낀 한강 저 멀리
죽은 듯 드러누운 철길 위로
무뚝뚝하게 저 혼자 달려가는
검고 가느다란 기차는
여느 때처럼 밝은 미소를 짓지 못하고
조용히 누워만 있던 아버지 닮아 보였다.
늦가을
한강 철길을 달리는 기차의 모습은
오랜 세월 지나도록 되살아나는
소녀의 시린 아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