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차 유리문에 기대어서다 남아버린 손자국 어둠 속 당신의 얼굴은 플라타너스의 살아 번지는 푸른 잎맥 유리창에 비친 나의 얼굴위로 당신은 신문을 보거나 나의 등 뒤에서 고개 숙여 잠이든 떠오르지 않는 얼굴 나의 가슴을 관통하여 뭉클 몸 밖을 빠져 나온 아득한 유리문 밖, 안전선에서
당신은 나를 만난 적이 있습니까?
침목을 따라 바삐 달아나는 표정들 미로처럼 어둔 통로를 빠져나간 그 자리에 길모퉁이 플라타너스 나는 벌써 몇 번째 당신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박선경/ 《시작》2005년 여름호
* 데자뷰(deja-vu)프랑스어로 ‘이미 보았다’는 의미. 이미 와 본적이 있거나 경험한 적이 있다는 느낌이나 환상. 기억의 단편화가 심하여 다른 기억들과 연관을 맺기가 어려운 경우.
출근길 매번 지나쳤던 플라타너스가 있습니다. 그 플라타너스는 아마도 수 년 동안 잎을 틔우고 또 낙엽으로 뒹굴며, 늘 그 자리에서 서성였을 것입니다. 다만 눈이 마주친 적 없이 서로를 보지 못했을 뿐. 이 시는 그런 존재와의 조우를 통해, <인연>의 의미와 관계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합니다. 무미건조한 객차 안 사람들을 <당신>이라는 호칭으로 묶어내는 시선이라든가, 지하철 출입문에 찍힌 지문에서 플라타너스 잎맥을 상상하는 표현이 애틋합니다. 당신은 나를 만난 적 있습니까? 생각해보면 해볼수록 참 깊이 있는 질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