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방폭포가 멋있데. 폭포가 바다로 떨어진다잖아.”
“아니야, 천지연이 더 멋있데. 울창한 숲이 있잖아.”
“난 돌고래 쇼가 더 좋아. 참 신기해. 돌고래와 물범이 재주를 부리는 게.”
“난 사진을 많이 찍을 거야. 여행에서 남는 건 사진뿐이래.”
며칠 전부터 우리 반 아이들은 수다쟁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굴에선 웃음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수학여행을 간다는 게 좋은지 아이들은 연신 웃음보를 터트렸습니다. 마치 풍선을 타고 하늘을 나는 것처럼 아이들은 들떠 있었습니다. 제주도를 한 바퀴 돌며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초등학교 시절의 가장 큰 기쁨이겠지요.
“엄마, 수학여행 간 대요.”
어제 저녁 나는 며칠을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습니다.
“수학여행을 갈 수 있겠니?”
어머니의 풀죽은 목소리를 듣고 나는 더 조르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가셨다가 태풍에 휩쓸린 후, 어머니의 품삯으로 하루하루를 지내는 형편에 도저히 수학 여행비를 낼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형철아, 아무 걱정 말고 와라. 돈은 내가 낼게.”
우리 집 형편을 아시는 선생님께서 몇 번이나 말씀하셨습니다.
“엄마, 선생님이 돈걱정 말고 꼭 나오래요. 내가 안 가면 수학여행 안 떠난 대요.”
나는 수학여행을 같이 가야 한다고 말씀하시던 선생님의 얼굴을 떠올렸습니다.
“글세, 고맙기는 하다마는 짐이 되서야 되겠니?”
나는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수학여행을 아주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수학여행을 가는 날 아침, 괜히 마음이 텅 빈 것 같아 마루에 앉아 한라산만 쳐다보고 있는데, 선생님이 급히 달려오셨습니다.
“승철아, 뭐하니? 수학여행 갈 준비도 안 하고. 친구들이 다 기다리고 있어.”
선생님께서는 손수건으로 땀을 닦으시며 재촉했습니다.
“아이고, 선생님 오셨어요? 죄송합니다. 우리 승철이 수학여행 못 가요.”
어머니는 죄를 진 사람처럼 손을 비비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승철이 어머님, 아무 걱정 마시고 보내세요. 제가 책임질게요.”
선생님께서 몇 번이나 말씀하셨지만 어머니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선생님께서 자꾸 가야 한다고 하시자 마침내 어머니께서 허락을 하셨습니다.
“승철아. 선생님 속 썩이지 말고 잘 갔다 와라.”
어머니는 급히 가방을 챙겨 주시면서 내 손안에 삼백원을 쥐어 주셨습니다. 삼백원은 어머니가 가지고 계신 돈의 전부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형, 잘 갔다 와. 구경 많이 하고.”
“그래, 잘 있어.”
나는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선생님의 뒤를 따라 집을 나섰습니다.
학교 운동장에는 날씬한 버스 한 대가 서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벌써 버스에 올라 선생님과 내가 오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서 와. 승철아, 내 곁에 앉아.”
민수가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나는 수학 여행비도 내지 않고 따라온 게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곧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경치와 친구들의 노래 소리에 파묻혀 부끄러움을 잊었습니다.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것 같은 폭포랑 서귀포 앞바다의 섬들, 거대한 성산 일출봉. 신비한 만장굴과 거북 바위 등 구경하는 것마다 정말 신기한고 아름다웠습니다.
"야! 이래서 관광객이 많이 오는구나. 동양의 하와이라는 말이 정말이야.’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구경보다 군것질에 정신을 더 파는 것 같았습니다. 가방에 가득 담아 온 과자를 언제 다 먹었는지 버스가 멈추기만 하면 재빨리 상점으로 달려가 아이스크림이랑 과자를 들고 왔습니다. 군것질하는 아이들을 보며 나도 군것질을 하고 싶은 생각이 났습니다. 그렇지만 주머니에 들어 있는 돈을 손끝으로 만지며 나는 꾹 참았습니다. 비록 적은 돈이지만 나에겐 귀한 돈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바지 주머니에 있는 돈 모두를 털어 주셨는데 함부로 쓸 수가 있나요.
그러나, 일출봉에서 내려왔을 때, 나는 몹시 목이 말랐습니다. 그래서 망설이다가 쮸쮸바 하나를 사 먹었습니다.
아이들은 천원짜리를 척척 꺼내 기념품도 샀습니다. 용돈을 준 할아버지께 드린다면 효자 손을 사는 아이도 있고, 언니에게 준다며 산호 목걸이를 사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나도 동생에게 선물을 사주고 싶었습니다. 장난감이 하나도 없는 동생이 늘 안쓰러웠습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 뒤편에 서서 눈치만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돌하르방을 보았습니다. 작고 귀여운 모습의 돌하르방의 가슴에는 100원이란 딱지가 붙어 있었습니다.
나는 혹시나 잘못 본 게 아닌가 하고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이 돌하르방 얼마예요?”
“그건, 백원짜리야.”
점원 누나는 비싼 물건을 팔기에 정신이 없는지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습니다.
“돈 여기 있어요.”
나는 돈 백원을 내밀고 돌하르방을 가졌습니다. 돌하르방을 받고 좋아할 동생의 모습의 눈에 선했습니다.
저녁이 되어 여관에 도착하였습니다. 밤이 늦도록 아이들이 돌아다녀 선생님께서 애를 태우셨습니다. 새벽에도 일찍 일어난 아이들이 우당탕거려 일찍 잠이 깼습니다.
선생님께서도 잠이 모자라신 지 눈이 붉어 보였습니다.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에 잠을 자지 못했을 것입니다. 술을 드는 다음 날, 봉봉을 맛있게 드시던 아버지 생각이 났습니다. 선생님께 봉봉을 사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호주머니 속에는 백원짜리 동전 하나가 달랑 들어 있을 뿐입니다.
‘삼백원만 있었으면 박카스라도 사 드릴 수 있을 텐데.’
나는 돈을 써 버린 것이 아쉬웠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상점에 가서 요구르트를 하나 샀습니다.
“선생님, 이거…….”
“웬 요구르트냐?”
선생님은 아이들이 세수하는 걸 지켜보다가 내가 드리는 요구르트를 보고 의아해 하셨습니다.
“선생님 드리려고 샀어요.”
“그래? 고맙다. 너나 먹지. 돈도 없을 텐데.”
“저도 먹었어요.”
그런데 선생님은 내게 참 난처한 질문을 하셨습니다.
“너 돈 얼마 가지고 왔니?”
나는 참 부끄러웠습니다. 그렇지만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삼백원요.”
“삼백원? 네가 쓰기에도 모자랄 텐데 요구르트를 샀구나. 나머지 돈으론 뭘 샀니?”
선생님은 요구르트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며 물었습니다.
“저, 백 원은 일출봉에 올라갔다가 목이 말라 쮸쮸바 사 먹고, 백 원으론 동생 줄려고 돌하르방을 샀어요.”
“그래? 작은 돈으로 참 값있게 썼구나.”
선생님은 내가 드린 요구르트를 한참 내려다 보셨습니다.
아침 햇살이 선생님 눈가에 맺힌 물방울에 비쳐 환히 빛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