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아주 짧은 통화를 하고
가는 사람을 여러번 목격하고는 호기심이 생겼다.
언제부터인가 그시각이면 그 식품점앞에서 그를 보게 되었고
우연치않게 그 사람의 통화 내용을 들었다.
"너희집앞이야.., 그래 괜찮아. 아프지말고 또 올께.."
그렇게 수화기를 놓고 돌아서는 그 사람의 어깨가 왠지 안스러워
보인건 기분탓이었을까?
그렇구나. 애인한테 연락을 하는 모양이네. 많이 아픈 모양이지
집 앞까지 온사람을 한번도 보러 나오지 않고.... 좋겠다.
그후 참 이상한건 애인이 있는줄 알면서도 그 시간이면
그 장소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내가 있었다. ?
같은 시각에 내가 옆에 있는것도 모른체 여전히 전화를 하고
돌아가는 사람...
통화 내용은 항상 같았다. 앵무새처럼 반복되는 그의 말도
어느 순간부터 이해가 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그의 그런 정성에도 한번 나와보지 않는 그의 애인에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마치 내일인양..... 아니, 나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그의 무관심에 더 화가 나기 시작했던것 같다.
그렇게 반복되는 시간이 한 달정도 지나을까?
도저히 견딜수 없게 된 나는 오늘은 꼭 용기를 내서 말을 해야지
하고 결심을 했다. 그에게 아무것도 받은것은 없지만
어느새 난 그에게 알수없는 연민을 느끼고 있는 자신을 본 것이다.
하지만 나의 결심은 끝내 이루지 못했다.
그에 대해 싹뜨는 사랑 또한 그에게 영영 말을 할수가 없었다.
그날 그가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통화하던 날이 나와의 만남 또한
마지막으로 끝나버렸으니깐...
"그래 이제 못와, 내가 없어도 괜찮지, 옆에 있어 주고 싶었는데
미안해, 응, 여기선 안될것 같아서 이민가기로 했어.
그래 다 잘있어. 이젠 전화도 못할거야..."
그날따라 유난히 길게통화하고 떠나가던 사람,
수화기를 놓고 눈물을 흘리는 그에게 난 차마 다가설 용기가 나지 않아
그저 떠나는 그사람을 쳐다보고 있을수 밖에 없었다.
도대체 그들은 왜 저렇게 헤어져야 하는 걸까?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난 용기를 내어 한달 동안 어깨넘어로 보아온 전화번호를
눌러보았다.
그런데...
"이 번호는 결번이오니 다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수화기를 떨어트리고 그가 돌아서 가던 곳으로 뛰어 가
보았다. 하지만 이미 그 곳에는 그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나는 몇일을 그 생각에서 헤어나질 못했다.
그는 누구에게 전화를 한것인지?
그는 정상이었는지?
도대체 누구와 그리 애타게 통화를 한것인지?
내 머리로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몇일후,
그 식품점에서 우연치 않게 듣게 된 소식.
"그래 그 이층집 아들, 저 위 동네 처녀하고 그리 죽고 못산다던
그래 죽었데..."
"죽어? 몇일전까지만 해도 여기 매일 와서 전화 하고 가던데.."
"글쎄, 그 아가씨가 두달전인가 지병으로 죽고 나서부터
정신이 반이 나간것 같이 매일 그 아가씨랑 이야기를 한다고
왔다 갔다 하는 걸 더 뒀다가는 아들 정신병자 만들겠다고
걱정된 부모가 이민간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 말 들은
아들이 다음날 유서 남기고 자살을 했다네..."
"저런 세상에... 뭐라고 유서를?"
"뭐라더라? 뭐 도저히 그녀를 혼자 두고 갈수 없다나 어쨌다나?"
"아이고 저런, 불쌍들해서 어떻게?"
"그래서 영혼 결혼식 올려준다나봐..."
그랬구나.
그런거였구나...
매일 공중전화박스속에서
그는 그의 아픈 애인이 외로울까봐 전화를 해준거였구나.
그는 그녀에게 이별을 고하고 도저히 떠날수 없어서
그녀의 곁으로 간거구나...
난눈물이 났다. 뭐가 그리 슬픈지 목이 터지도록 울었다.
지나가던 주위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도 아랑곳 없이...
그는 이제 사랑하는 그녀 곁에 있을수 있어서 행복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도 못했던 내 짝사랑.
자신의 영원한 사랑을 찾아갈수 있던 용기
나도 그런 사람을 만날수 있을까?
지금도 그 공중전화박스를 지날때면 그 사람이 생각나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고 그에게 전화를 해본다.
"안녕하세요?
저 기억하세요. 매일 전화하는것 지켜봤던 사람인데...
행복하시다고요? 축하해요...
헌데 한가지만 얘기할께요. 제가 좋아했던것 아세요?
아셨다고요.. 알았어요. 고마워요...
행복하세요. "